올라뷔르 토르스
1. 개요
올라뷔르 토르스는 1926년부터 1964년 사망할 때까지 아이슬란드 국회의원으로 활동했으며, 1932년 법무부 장관 대리를 역임했다. 그는 산업부, 외무부, 사회부, 어업 및 산업부, 어업부 장관을 차례로 역임했고, 1942년, 1944년-1947년, 1949년-1950년, 1953년-1956년, 1959년-1963년까지 총 5번 아이슬란드 총리를 지냈다. 1934년부터 1961년까지 독립당 대표를 역임했으며, 1961년에는 건강 문제로 3개월간 휴가를 내어 뱌르니 베네딕트손이 임시 총리를 맡았다.
| 이름 | 올라뷔르 토르스 |
|---|---|
| 출생일 | 1892년 1월 19일 |
| 출생지 | 보르가르네스, 아이슬란드 |
| 사망일 | 1964년 12월 31일 |
| 사망지 | 레이캬비크, 아이슬란드 |
| 정당 | 독립당 |
| 배우자 | 잉기비외르그 인드리다도티르 |
| 자녀 | 4명 |
| 부모 | 토르 필립 악셀 옌센 마르그레트 소르비외르그 크리스티안스도티르 |
| 모교 | 코펜하겐 대학교 법학부 |
| 대통령 | 아우스게이르 아우스게이르손 |
|---|---|
| 임기 시작 | 1962년 1월 1일 |
| 임기 종료 | 1963년 11월 14일 |
| 이전 | 비아르니 베네딕트손 |
| 이후 | 비아르니 베네딕트손 |
| 대통령 | 아우스게이르 아우스게이르손 |
| 임기 시작 | 1959년 11월 20일 |
| 임기 종료 | 1961년 9월 8일 |
| 이전 | 에밀 욘손 |
| 이후 | 비아르니 베네딕트손 |
| 대통령 | 아우스게이르 아우스게이르손 |
| 임기 시작 | 1953년 9월 11일 |
| 임기 종료 | 1956년 7월 24일 |
| 이전 | 스테인그림뮈르 스테인소르손 |
| 이후 | 헤르만 욘나손 |
| 대통령 | 스베인 비외르손 |
| 임기 시작 | 1949년 12월 6일 |
| 임기 종료 | 1950년 3월 14일 |
| 이전 | 스테판 스테판손 |
| 이후 | 스테인그림뮈르 스테인소르손 |
| 임기 시작 | 1944년 10월 21일 |
| 임기 종료 | 1947년 2월 4일 |
| 이전 | 비외른 소르다르손 |
| 이후 | 스테판 스테판손 |
| 군주 | 크리스티안 10세 |
| 대통령 | 스베인 비외르손 |
| 임기 시작 | 1942년 5월 16일 |
| 임기 종료 | 1942년 12월 16일 |
| 이전 | 헤르만 욘나손 |
| 이후 | 비외른 소르다르손 |
| 임기 시작 | 1944년 10월 21일 |
| 임기 종료 | 1947년 2월 4일 |
| 총리 | 본인 |
| 이전 | 빌혤름 토르 |
| 이후 | 비아르니 베네딕트손 |
| 임기 시작 | 1942년 5월 16일 |
| 이전 | 스테판 스테판손 |
| 총리 | 본인 |
| 이후 | 빌혤름 토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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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계 아이슬란드인 -
에밀리아나 토리니
아이슬란드 출신 싱어송라이터이자 음악 프로듀서인 에밀리아나 토리니는 어린 시절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였고, 런던으로 진출하여 다양한 아티스트와 협업하며 솔로 앨범 발매 및 영화 음악 참여 등 다방면으로 활동했다. -
덴마크계 아이슬란드인 -
프레데리크 8세
프레데리크 8세는 43년간 왕세자로 지내다 6년간 덴마크를 통치한 자유주의적 성향의 군주로, 스웨덴 로비사 왕녀와의 결혼으로 덴마크, 노르웨이, 벨기에, 룩셈부르크 왕가의 혈통을 이었으며 함부르크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
덴마크에 거주한 아이슬란드인 -
아리 프레이르 스쿨라손
아리 프레이르 스쿨라손은 발루르에서 프로 데뷔하여 스웨덴 리그를 거쳐 현재 IF 실비아에서 뛰고 있는 아이슬란드 축구 선수로, 국가대표로 81경기 출전 및 UEFA 유로 2016과 2018 FIFA 월드컵에 참가했다. -
덴마크에 거주한 아이슬란드인 -
테오도르 엘마르 비아르드나손
테오도르 엘마르 비아르드나손은 KR 레이캬비크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셀틱 FC, 린 오슬로, IFK 예테보리 등 다양한 유럽 클럽과 튀르키예 리그에서 활약한 아이슬란드의 축구 선수이며, 아이슬란드 국가대표팀으로 UEFA 유로 2016에 참가하고 2017 차이나컵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는 데 기여했다. -
아이슬란드의 총리 -
게이르 호르데
게이르 호르데는 경제학 학위를 받고 아이슬란드 중앙은행 경제학자, 재무부 장관 정치 고문, 알싱 의원, 재무장관, 외무장관 등을 역임했으며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아이슬란드 총리를 지낸 정치인으로, 2008년 금융 위기 당시 총리로서 위기 대응에 대한 책임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고, 이후 주 미국 아이슬란드 대사를 역임했다. -
아이슬란드의 총리 -
아우스게이르 아우스게이르손
아우스게이르 아우스게이르손은 아이슬란드의 정치인이자 제2대 대통령으로, 신학을 전공하고 진보당 소속으로 알팅 의원, 재무장관, 총리를 지냈으며, 대통령 재임 시절 아이슬란드의 외교적 위상을 높이고 사회민주주의적 이상을 바탕으로 사회 현대화와 복지 증진에 기여했다.
2. 정치 경력
토르 필립 악셀 옌센의 아들인 올라뷔르 토르스는 1926년부터 사망한 1964년까지 알팅기 의원으로 활동하며 오랜 기간 아이슬란드 정치에 깊이 관여했다. 그는 국회의원으로 재직하는 동안 여러 차례 장관직과 총리직을 역임했으며, 1934년부터 1961년까지 독립당 대표를 지냈다.
2.1. 장관직 역임
올라뷔르 토르스는 1926년부터 사망한 1964년까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그의 첫 장관직은 1932년 11월 14일부터 12월 23일까지 약 한 달간 맡았던 법무부 장관 대리였다. 이후 그는 여러 정부 부처에서 장관직을 수행하며 폭넓은 경험을 쌓았다. 그의 주요 장관직 역임 경력은 다음과 같다.
이 외에도 그는 여러 차례 총리직을 역임했으며, 독립당 대표로서 아이슬란드 정치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2.2. 총리 재임
올라뷔르 토르스는 총 다섯 차례에 걸쳐 아이슬란드의 총리를 역임했다. 재임 기간은 1942년, 1944년-1947년, 1949년-1950년, 1953년-1956년, 그리고 1959년-1963년이다. 그는 총리직과 함께 다른 장관직을 겸임하기도 했는데, 1942년과 1944년-1947년에는 외무부 장관을, 1949년-1950년에는 사회부 장관을, 1953년-1956년에는 어업부 장관을 겸임했다.
1961년에는 병가로 3개월간 휴직했으며, 이 기간에는 뱌르니 베네딕트손이 임시 총리를 맡았다. 그의 다섯 번째 정부(1959-1963)는 독립당이 사회 민주주의자들과 구성한 연립 정부였으며, 이 연정은 이후 다른 두 명의 독립당 총리 아래 1971년까지 지속되었다.
2.3. 독립당 대표
올라뷔르 토르스는 1934년부터 1961년까지 독립당의 대표를 맡아 당을 이끌었다. 그가 대표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그의 마지막 정부 구성이었던 사회 민주주의자들과의 연정은 독립당 소속의 다른 두 총리 아래에서 1971년까지 유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