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세프 구트프로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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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요세프 구트프로인드는 루마니아 출신의 레슬링 선수로,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이스라엘 선수단의 코치로 참여했다. 1972년 9월 5일, 뮌헨 올림픽 선수촌에 침입한 검은 9월단 테러리스트를 발견하고 문을 막아 동료들에게 경고하여 탈출 시간을 벌어주었으나, 인질로 잡혀 21시간 후 구출 작전 실패로 사망했다. 그의 용감한 행동은 테러에 맞선 용기로 평가받으며, 뮌헨 올림픽 참사는 올림픽 안전 및 테러 대응 강화에 영향을 미쳤다.

요세프 구트프로인드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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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세프 구트프로인트
출생일1931년 11월 1일
출생지크라이오바, 루마니아
사망일1972년 9월 6일
사망 장소뮌헨, 서독
직업
기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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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요세프 구트프로인드는 수의사가 되기 위해 루마니아에서 의과대학에 다녔지만, 나중에 레슬링을 시작했다. 뮌헨은 그가 레슬링 심판으로 참여한 세 번째 올림픽이었다.

3. 뮌헨 올림픽 참사

1972년 9월 5일, 검은 9월단은 뮌헨 올림픽 선수촌에 침입하여 이스라엘 선수단을 인질로 잡았다. 이 과정에서 레슬링 코치 모셰 와인베르그와 역도 선수 요세프 로마노가 살해당했고, 구트프로인드를 포함한 9명이 인질이 되었다. 9월 6일, 서독 당국의 구출 작전 실패로 구트프로인드는 테러리스트들에게 총살당했다.

3.1. 납치 및 사망

1972년 9월 5일, 구트프로인드는 올림픽 선수촌의 이스라엘 코치 숙소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새벽 4시 30분경, 문 밖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조사하러 나갔다. 그는 문을 열 수 있는 다른 열쇠를 가지고 있는 레슬링 코치 모셰 와인베르그라고 생각했다. 문이 열리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반대편에서 총을 든 복면을 한 남자를 얼핏 보았다. 구트프로인드는 키 190cm, 몸무게 130kg의 몸으로 문에 몸을 던져 다른 이스라엘인들에게 경고를 외쳤다. 구트프로인드와 8명의 페다인(fedayeen)이 문을 사이에 두고 가한 힘은 경첩과 문틀을 제자리에서 벗어나게 하기에 충분했다. 구트프로인드가 벌어준 몇 초의 시간은 그의 룸메이트인 역도 코치 투비아 소콜스키가 창문을 깨고 탈출하는 데 충분했다. 옆집 2호실에 있던 경보 선수 샤울 라다니 박사 역시 구트프로인드의 비명에 잠에서 깨어 건물에서 탈출했다.

구트프로인드를 비롯한 이스라엘 올림픽 팀의 다른 8명은 테러리스트들에게 붙잡혔다. 납치범들에게 저항한 다른 두 명, 레슬링 코치 와인베르그와 역도 선수 요세프 로마노는 침입자들에 의해 초기에 살해당했다.

21시간 후인 9월 6일, 구트프로인드는 서독 당국의 구출 작전 실패로 테러리스트들에게 총살당했다.

4. 영향 및 평가

구트프로인드는 테러에 맞선 용기 있는 행동으로 기억되고 있다. 1972년 9월 5일, 뮌헨 올림픽 선수촌에서 검은 9월단 테러리스트들이 이스라엘 선수단 숙소에 침입했을 때, 구트프로인드는 자신의 몸을 던져 문을 막고 동료들에게 경고를 외쳤다. 그의 행동 덕분에 역도 코치 투비아 소콜스키와 경보 선수 샤울 라다니는 탈출할 수 있었다.

구트프로인드의 행동은 동료 선수들이 탈출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었으며, 국제 사회에 테러의 위험성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비록 구트프로인드를 포함한 11명의 이스라엘 선수단이 목숨을 잃었지만, 그의 용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뮌헨 올림픽 참사는 올림픽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되며, 이후 올림픽 안전 및 테러 대응 강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