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태설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본문
유태설(劉泰卨, 1890년 2월 19일 ~ 1968년 12월 1일)은 일제강점기의 법조인이자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낸 인물입니다. 함경남도 북청군 출신으로, 1914년 경성전수학교를 졸업하고 조선총독부 판사로 임명되어 법조계에서 활동했습니다.
주요 경력:
- 부산지방법원 밀양지청 서기 겸 통역생
- 공주지방법원 홍성지청 판사
- 함흥지방법원 판사
- 함흥지방법원 원산지청 판사
- 평양복심법원 판사
- 함흥부 변호사 개업
- 함흥부회 의원
- 함경남도 도회의원
-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 (1933년)
- 조선임전보국단 간부
생애:유태설은 1914년 경성전수학교를 졸업한 후, 조선총독부 재판소 서기 겸 통역생으로 근무하다가 1916년 판사로 임명되었습니다. 공주지방법원 홍성지청 판사, 함흥지방법원 판사 등을 거쳐 1926년까지 평양복심법원 판사로 재직했습니다. 1926년 퇴직 후에는 함흥에서 변호사로 개업하여 활동했습니다.
1933년에는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로 발탁되었으며, 함흥부회 의원, 함경남도 도회의원 등을 역임하며 지역 유지로 활동했습니다. 태평양 전쟁 시기에는 조선임전보국단에 가담하기도 했습니다.
해방 이후:해방 후에는 미군정 지역인 서울에 거주했습니다. 1949년 반민족행위처벌법에 따라 반민특위의 조사 대상에 올랐으나, 도피자로 처리되어 체포되지 않았습니다. 이후 반민특위 활동 중단으로 처벌받지 않고 1968년에 사망했습니다.
사후 평가:유태설은 친일 행적이 명확하여, 다음과 같은 친일 관련 명단에 포함되었습니다.
-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 (중추원 부문)
-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추원, 사법 부문)
-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
논란:일제강점기 함경남도 도회의원 시절, 조선질소비료주식회사의 전기료 문제를 지적하며 함경남도 교육 재정 확충을 주장하는 등 지역 사회를 위한 활동을 한 기록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친일 행적은 변호할 수 없는 사실로 남아있습니다.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