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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 (156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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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이덕일(李德一)은 1561년에 태어나 1622년에 사망한 조선시대의 무신입니다. 본관은 함풍(咸豐), 자는 경이(敬而), 호는 칠실(漆室)입니다.
생애 및 활동:


  • 어릴 때부터 글을 배웠으나,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무과에 응시하여 급제했습니다.
  • 1597년 정유재란 때 의병을 조직하여 활약하였고, 이순신 장군과 함께 전과를 올렸습니다.
  • 이순신 사후, 성을 쌓아 적을 제압할 방책을 논하여 절충장군에 올랐습니다.
  • 통제영 우후(虞侯)를 거쳐 1610년 병조좌랑, 춘추관기사관을 역임하며 『선조실록』 편찬에 참여했습니다.
  • 1613년 계축옥사 때 삭직당한 후, 고향으로 돌아가 「우국가(憂國歌)」 28수를 지어 우국충정을 표현했습니다. 이 「우국가」는 「당쟁상심가(黨爭傷心歌)」 또는 「당쟁비가(黨爭悲歌)」라고도 불립니다.
  • 저서로는 『칠실유고』 2권 1책이 있습니다.
  • 함평의 월산사(月山祠)에 제향되었습니다.

추가 정보:

  • 함풍 이씨 대종회 웹사이트에 따르면 월산사는 칠실공 이덕일 장군을 모신 사당입니다. 1712년(숙종 38)에 이덕일의 사당이 건립되었고, 1731년(영조 7)에 충무공 이순신을 함께 배향하면서 월산사(月山祠)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3]
  • 학자이며 의병장인 강항(姜沆)과 교유하였습니다.[1]
  • 당대의 세력가 유희분(柳希奮)의 매부였으나, 중앙 정국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을 지켰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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