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우 (1907년)
1. 개요
이만우는 1907년에 태어난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제4대와 제5대 국회의원을 역임했으며, 제2대, 제3대,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그는 민주당 소속으로 활동했으며, 국회의원 선거 결과를 통해 그의 정치적 행보를 확인할 수 있다.
-
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김웅 (정치인)
-
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정진석 (정치인)
-
경상남도의 국회의원 -
노회찬
-
경상남도의 국회의원 -
허영호 (정치인)
허영호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참여하고 신간회 활동을 했으나, 중일전쟁 이후 친일로 전향하여 해방 후 혜화전문학교 교장과 동국대학교 학장을 역임했으며, 제헌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되었지만 한국 전쟁 중 납북되어 사후 친일 행적이 드러나 건국훈장이 취소되고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되었다. -
대한민국의 제4대 국회의원 -
주요한
주요한은 일제강점기 시인이자 언론인이자 정치인이며, 친일 행위로 인해 논란이 있으며, 국회의원과 상공부 장관을 역임했다. -
대한민국의 제4대 국회의원 -
유옥우
유옥우는 자유당에서 정계 입문 후 야당에서 활동하며 여러 차례 국회의원을 지냈고, 한일협정 반대 운동 중 옥고를 치렀으며 정치 테러를 당하기도 했으나, 국가보위입법회의 참여 경력으로 비판받기도 한 정치인이다.
2. 생애 및 정치 활동
(이전 출력이 없으므로, 수정할 내용이 없습니다. 원본 소스를 제공해주시면 생애 및 정치 활동 섹션을 작성해드리겠습니다.)
3. 역대 선거 결과
이만우는 1950년 제2대 총선과 1954년 제3대 총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낙선하였으나, 4.19 혁명 직후 치러진 1958년 제4대 총선과 1960년 제5대 총선에서는 민주당 소속으로 부산시 영도구 을에서 당선되어 재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그러나 5.16 군사정변 이후 1963년 제6대 총선에서는 낙선하였다.
3.1. 제2대 국회의원 선거 (1950년)
1950년 대한민국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만우는 무소속으로 경남 부산시 무 선거구에 출마하여 5,062표를 얻어 23.10%의 득표율로 2위를 기록, 낙선하였다.
3.2. 제3대 국회의원 선거 (1954년)
1954년 대한민국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만우는 경남 부산시 무 선거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였다. 14,700표(36.57%)를 얻어 2위로 낙선하였으나, 1950년 대한민국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 비해 득표수는 9,638표, 득표율은 13.47%p 증가했다.
3.3. 제4대 국회의원 선거 (1958년)
1958년 대한민국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만우는 민주당 소속으로 경남 부산시 영도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9,608표(47.48%)를 얻어 1위를 기록, 초선 의원이 되었다. 당시 민주당은 자유당의 독재에 맞서는 대표적인 야당이었으며, 이만우의 당선은 민주당에 대한 지지와 정권 교체 열망이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 선거명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순위 | 당선 여부 | 비고 |
|---|---|---|---|---|---|---|
| 제4대 총선 | 경남 부산시 영도구 을 | 민주당 | 9,608표 (47.48%) | 1위 | 당선 | 초선 |
3.4. 제5대 국회의원 선거 (1960년)
1960년 대한민국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만우는 민주당 소속으로 경남 부산시 영도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10,296표(49.15%)를 얻어 당선되었다. 이는 4.19 혁명 이후 치러진 선거로, 민주당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높은 상황에서 재선에 성공한 것이다.
| 선거 | 대수 | 직함 | 선거구 | 정당 | 득표수 | 득표율 | 순위 | 당락 | 비고 |
|---|---|---|---|---|---|---|---|---|---|
| 1960년 | 5대 | 국회의원 | 경남 부산시 영도구 을 | 민주당 | 10,296표 | 49.15% | 1위 | 당선 | 재선 |
3.5. 제6대 국회의원 선거 (1963년)
이만우는 1963년 대한민국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산 영도구에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하였으나, 10,008표(20.43%)를 얻어 3위로 낙선하였다. 이는 5.16 군사정변 이후 변화된 정치 지형 속에서 그의 정치적 입지가 약화되었음을 보여준다.
| 선거명 | 득표수 | 득표율 | 순위 | 결과 |
|---|---|---|---|---|
| 제6대 총선 | 10,008표 | 20.43% | 3위 | 낙선 |
4. 평가 및 영향
(이전 출력이 없으므로, 수정할 내용이 없습니다. 원본 소스를 제공해주시면 '평가 및 영향' 섹션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