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환 (19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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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1900년에 태어난 이성환은 일제강점기의 언론인으로, 호는 벽타(碧朶)이며 본적은 함경남도 영흥군입니다. 창씨개명한 이름은 안흥성환(安興晟煥)입니다.
주요 활동:
- 언론 활동: 1922년부터 1932년까지 '개벽사' 동인으로 활동했습니다.
- 사회 활동: 1925년 조선농민사의 이사 겸 상무이사, 1927년 조선농민사 주간과 천도교청년당 중앙집행위원을 역임했습니다. 1931년에는 전조선농민조합에서 재만동포문제 조사를 위해 만주에 파견되기도 했으며, 전조선농민조합의 집행위원장을 지냈습니다.
- 친일 행적: 1936년 이후 징병제 요망운동 발기인 상무준비위원, 1939년 배영동지회 및 배영동지회연맹 상무이사로 활동했습니다. 1941년 임전대책협의회 준비위원 및 상무위원,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 및 상무이사, 1944년 국민동원총지회 상무이사 및 이사장, 1945년 조선언론보국회 준비위원 및 상무이사, 국민동지회 회장대리 등을 역임했습니다.
- 1937년부터 『매일신보』, 『삼천리』 등의 언론매체에 기고 및 강연 등을 통해 조선인 지원병, 징병, 징용 등을 선전, 선동했습니다.
- 내선일체 정신을 강화하고 일본제국주의 침략전쟁을 옹호하며 일본의 승리를 역설했습니다.
- 1938년부터 1939년까지 『삼천리』, 『재만조선인통신』, 『녹기』 등의 잡지에 「중대한 사명을 자각하라」, 「내선일체는 먼저 무엇부터 시작할까」 등의 기고를 통해 내선일체의 실현을 주장했습니다.
- 1940년부터 『삼천리』, 『대동아』, 『매일신보』 등의 언론매체에 기고하고, 조선총독부 최대 외곽단체인 국민총력조선연맹 주최 지원병 제도 취지 보급 강연회와 경성지원병 제도 취지 보급 실행위원회 주최 강연회 등에서 지원병 및 징병과 징용의 취지를 보급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 조선임전보국단의 전선국민대회 강연회 연사, 1944년 국민동원총진회 주최 국민동원대강연회 연사로도 활동했습니다.
학력:
- 1922년 일본 교토고등잠업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이러한 친일 행적으로 인해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의 종교 부문에 포함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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