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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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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이언괄(李彦适, 1494년 2월 10일 ~ 1553년 1월 14일)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입니다. 자는 자용(子容), 호는 농재(聾齋)이며, 본관은 여주(驪州)입니다. 이언적의 동생으로, 어려서부터 형에게 글을 배웠습니다.

이언괄은 효성이 지극하고 성품이 맑았으며, 성리학에 밝았습니다. 1541년(중종 35년) 효행으로 천거되어 경기전참봉을 역임하고 주부로 체직되었으나 사직하였습니다. 이후 형 이언적이 유배되자 간곡한 권유로 송라도찰방으로 부임하여 지방민을 잘 다스렸습니다. 형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유배지에서 풀려나지 못하자 억울함을 상소하였으며, 윤원형 일파의 전횡을 규탄하기도 했습니다.

1553년(명종 8년)에 사망하였으며, 사후 사헌부지평에 증직되었고, 대사헌에 가증되었습니다. 경주의 덕계사(德溪祠)와 덕연사(德淵祠), 운천서원(雲泉書院) 등에 배향되었습니다. 저서로는 《농재유고(農齋遺稿)》가 있습니다.

이언괄은 벼슬을 마다하고 실천적 학문을 행하며 노모를 봉양하였고, 유배된 형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상소문을 지어 규탄하는 등 올곧은 선비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이러한 노력은 후손들에게 이어져 가문을 유지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다음은 이언괄에 대한 추가 정보입니다.


  • 가족 관계:
  • 아버지: 이번(李蕃)
  • 어머니: 경주 손씨(慶州孫氏) - 손소(孫昭)의 딸
  • 형: 이언적(李彦迪)
  • 주요 활동:
  • 송라도찰방 역임
  • 형 이언적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상소
  • 윤원형 일파의 전횡 규탄
  • 사후 추증 및 배향:
  • 사헌부지평 증직
  • 사헌부대사헌 가증
  • 경주 덕계사, 덕연사, 운천서원 등에 배향
  • 관련 유적:
  • 경주 양동 심수정: 이언괄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정자 (1560년경 건립)
  • 포항시 남구 연일읍 달전리: 이언괄 묘소
  • 포항시 북구 기북면 덕동마을 용계정(사의당): 이언괄과 그의 부친을 모신 세덕사의 부속 건물


이언괄은 비록 높은 벼슬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학문과 효행, 그리고 형을 위한 헌신적인 노력으로 조선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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