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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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이은관(李殷官, 1917년 11월 27일 ~ 2014년 3월 12일)은 대한민국의 국악인이다. 본관은 전주이다.
생애1917년 11월 27일, 지금의 북한 강원도 이천군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을 강원도 평강에서 잠시 보낸 후, 강원도 철원에서 성장했다. 철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1941년 철원에서 열린 철도음악콩쿨 민요 부문에서 1등을 수상하며 민요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인수 명창에게서 서도민요와 배뱅이굿을 사사받았다. 1946년에는 대한국악원에 입단하여 주로 배뱅이굿을 공연하였다. 1957년 영화 《배뱅이굿》에 주연으로 출연하며 영화배우로 데뷔하기도 했다. 2014년 3월 12일, 향년 97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활동이은관은 서도 소리의 대가로, 특히 배뱅이굿의 명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배뱅이굿은 서도 소리의 하나로, 한 명의 소리꾼이 장구 반주에 맞춰 소리와 재담, 몸짓을 섞어 배뱅이 이야기를 서사적으로 풀어내는 1인 창극이다. 그는 50여 년간 배뱅이굿을 공연하면서 3,000개가 넘는 갓을 찢었다고 한다. 또한, 서도소리를 현대화하고 대중화하는 데에도 힘썼다. 색소폰 연주에도 특기가 있어 한국 전통 음악과 서양 고전 음악의 접목을 시도하기도 했다. 평생 동안 구전으로 전해오던 서도 소리를 악보로 옮기고 공연 무대에 올리는 등 왕성한 활동을 이어갔다.
업적1984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1990년 보관문화훈장을 수훈하였고, 1995년 한국국악협회 국악대상, 2002년 방일영국악상을 수상했다. 또한 한국국악협회 부이사장을 역임했다.
소속
- 前 한국국악협회 고문
- 이은관 민속예술학원 원장
평가이은관은 서도 소리의 전통을 잇고 발전시킨 국악계의 거장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배뱅이굿은 특유의 해학과 재담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으며, 서도 소리를 널리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또한, 국악 대중화와 서도 소리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다양한 훈장과 상을 받았다.
매스컴에서의 회고2002년 4월, 한 매체에서 배뱅이굿에 대해 해설하며 1960년대 희극인 남보원과 백남봉이 배뱅이굿을 포기한 것을 아쉬워했다.
참고
- 배뱅이굿은 평안도 김관준이 처음 불렀으며, 김관준의 아들 김응조를 거쳐 최순경과 이은수로 이어졌고, 이은관은 이은수에게 사사받았다.
- 이은관의 배뱅이굿은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로 지정되어 있다.
- 이은관은 장구를 자유자재로 돌리면서 기차소리, 바람소리를 내는 등 장구에도 능했다.
- 1957년 영화 '배뱅이굿'의 OST는 6만 장이 팔리는 인기를 누렸다.
- 이은관은 100세 기념 무대를 열겠다는 꿈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 2013년 EBS '장수의 비밀'에 출연하여 건강 비결을 공개했다.
이은관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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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이은관 |
원어 이름 | 李殷官 |
출생일 | 1917년 11월 27일 |
출생지 | 강원도 이천 |
사망일 | 2014년 3월 12일 |
사망지 | 서울특별시 |
직업 | 국악인 |
장르 | 한국 전통 음악 |
학력 | 강원도 평강고등보통학교 졸업 |
활동 시기 | 1936년 ~ 201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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