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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상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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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이형상(李衡祥, 1653년(효종 4년) 5월 23일 ~ 1733년(영조 9년))은 조선 후기의 문신입니다. 자는 중옥(仲玉), 호는 병와(甁窩)·순옹(順翁), 본관은 전주입니다.
주요 활동:


  • 1677년(숙종 3) 생원시에 합격하고, 1680년(숙종 6) 별시 문과에 급제하였습니다.
  • 성주목사, 청주목사, 동래도호부사 등 여러 관직을 역임했습니다.
  • 1702년(숙종 29) 제주목사로 부임하여 제주의 풍속을 유교식으로 바꾸는 데 힘썼습니다.
  • 동성동본 혼인 금지
  • 광정당(廣靜堂)을 비롯한 신당 철폐
  • 해녀복 제작
  • 삼성사(三姓祠) 건립
  • 헌마공신(獻馬功臣) 김만일 가문의 산마감목관 세습제 폐지
  • 제주목사 이임 후 영광군수, 호조참의 등을 지냈으나 사임하고, 경상북도 영천의 호연정(浩然亭)에서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에 힘썼습니다.
  • 1728년(영조 4) 경상도소모사(慶尙道召募使)에 임명되었습니다.

저서:

  • 『병와문집(甁窩文集)』
  • 『탐라순력도서(耽羅巡歷圖序)』 (『병와문집』에 수록)

제주목사 시절의 업적 (자세한 내용):이형상은 제주목사로 재임하면서 제주의 여러 폐단을 개혁하고 유교적 질서를 확립하고자 노력했습니다. 특히, 제주의 토속 신앙을 미신으로 간주하여 대대적인 신당 철폐를 단행했는데, 광정당을 비롯한 129개의 신당을 불태웠습니다. 또한, 해녀들이 나체로 물질하는 것을 금지하고 옷을 입도록 했으며, 남녀가 함께 목욕하는 풍습도 금지했습니다. 이러한 조치는 당시 제주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현재까지도 이형상의 제주목사 시절은 제주의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형상의 개혁은 제주 사회를 유교적 가치관에 맞게 변화시키려는 시도였지만, 동시에 제주 고유의 문화를 억압하는 측면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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