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황 (1497년)
1. 개요
이황은 조선 연산군과 폐비 신씨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으로, 1498년에 태어났다. 세자 시절 성품이 차분하고 총명하여 왕의 자질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았다. 정세명의 딸을 세자빈으로 맞이했으나 중종반정으로 인해 폐세자가 되었고, 1506년 창녕대군, 양평군, 이돈수 등과 함께 사사되었다.
| 이름 | 폐세자 이황 |
|---|---|
| 작위 | 조선의 왕세자 |
| 출생명 | 이황 |
| 금돌이 | 금돌이 |
| 재위 | 1502년 9월 15일 – 1506년 9월 2일 |
|---|---|
| 전임 | 왕세자 이융 |
| 후임 | 왕세자 이호 |
| 즉위식 | 1502년 9월 15일 |
| 배우자 | 창원 황씨 왕세자빈 |
|---|---|
| 자녀 | 없음 |
| 왕가 | 이씨 |
|---|---|
| 아버지 | 연산군 |
| 어머니 | 거창 신씨 폐비 신씨 |
| 출생일 | 1498년 1월 10일 |
| 출생지 | 조선 |
| 사망일 | 1506년 9월 24일 (8세) |
| 사망지 | 조선 |
| 묻힌 곳 | 알 수 없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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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위된 세자 -
장조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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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연산군의 자녀 -
창녕대군
창녕대군은 연산군과 폐비 신씨의 차남으로, 중종반정 이후 형, 이복형, 이복 동생과 함께 사사된 성종의 손자이자 중종의 조카이며 단경왕후와 외사촌 관계인 인물이다. -
조선 연산군의 자녀 -
휘신공주
휘신공주는 조선 연산군의 장녀로, 폐위된 후 폐서인되었으며 구문경에게 시집갔으나 중종반정 이후 이혼했다가 재결합했고, 영응대군과 임영대군의 후손이며 아들을 두었으나 후손이 단절되어 이안눌이 제사를 받들었다. -
1506년 사망 -
안드레아 만테냐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 안드레아 만테냐는 프란체스코 스콰르치오네에게 사사하여 고대 로마 미술에 대한 관심과 원근법 사용을 특징으로 하며, 만토바 궁정 화가로서 곤차가 가문 묘사, 〈카이사르의 개선〉, 〈죽은 그리스도를 애도함〉 등의 작품을 남겨 후대 화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
1506년 사망 -
연산군
조선 제10대 왕 연산군은 초기 국방 강화와 빈민 구제에 힘썼으나, 무오사화, 갑자사화를 일으키고 폭정을 자행하여 폐위된 후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했으며, 그의 폭정, 한글 탄압, 사찰 훼손, 방탕한 사생활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2. 생애
조선 제10대 임금 연산군과 폐비 신씨의 장남으로 태어나 세자가 되었다. 성품이 차분하고 총명하여 왕의 자질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1506년 중종반정으로 아버지 연산군이 폐위되면서 함께 폐세자(廢世子)로 강등되었고 곧이어 사사되었다.
2.1. 출생과 세자 시절
조선 제10대 임금인 연산군과 폐비 신씨 사이의 장남으로, 1498년 1월 10일(음력 1497년 12월 18일)에 태어났다. 성품은 차분하고 굳세며 엄숙했다고 전해진다. 세자 시절에는 할아버지인 성종과 기상이 닮았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총명하여 왕의 자질을 보였다고 한다.
정세명(丁世明)의 딸을 세자빈으로 맞이할 예정이었으나, 정식으로 길례를 치르기 전에 중종반정이 일어나 혼사가 무산되었다. 이후 정세명의 딸은 강희신(姜熙臣)에게 시집갔다.
중종반정으로 아버지 연산군이 폐위되면서 함께 폐세자(廢世子)로 강등되었다. 결국 1506년 10월 10일(음력 9월 24일)에 동생인 창녕대군 성, 양평군 인, 이돈수 등과 함께 사사되었다.
2.2. 중종반정과 폐위
연산군과 중전 신씨 사이의 장남으로 1498년 1월 10일(음력 12월 18일) 태어났다. 성품이 차분하고 굳세며 엄숙했고, 세자 시절에는 기상이 성종과 닮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총명하여 왕의 자질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정세명(丁世明)의 딸을 세자빈으로 맞이할 예정이었으나, 길례를 치르기 전에 중종반정이 일어나 정식 세자빈이 되지 못했다. 이후 정세명의 딸은 강희신(姜熙臣)에게 시집갔다.
중종반정으로 아버지 연산군이 폐위되면서 이황 역시 폐세자(廢世子)로 강등되었다. 결국 1506년 10월 10일(음력 9월 24일), 창녕대군 성, 양평군 인, 이돈수 등과 함께 사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