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궁동
1. 개요
재궁동은 경기도 군포시에 속하는 법정동이다. 과거 과천군 금정리 지역이었으며, 1992년 금정동에서 분리되어 재궁동이 되었다. 재궁동이라는 지명은 조선시대 한성부사를 지낸 송복산의 묘와 관련된 '재궁골'에서 유래되었다. 관할 구역 내에는 군포양정초등학교, 금정중학교, 군포고등학교 등의 교육 시설과 군포시립도서관이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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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포시의 행정동 -
금정동
금정동은 경기도 군포시에 위치한 동으로, 큰 샘에서 유래된 지명을 가지며, 금정역을 통해 철도 교통 이용이 가능하고 군포시청 등 공공기관과 편의시설이 있다. -
군포시의 행정동 -
대야동 (군포시)
대야동은 경기도 군포시에 위치하며 둔대동, 속달동, 대야미동으로 구성되어 있고, 수도권 전철 4호선 대야미역과 영동고속도로 군포 나들목이 위치한 교통 요충지이며, 문화재와 수자원을 포함하고 있다. -
군포시의 행정 구역 -
산본동
산본동은 경기도 군포시의 법정동으로, 수도권 전철 1호선과 4호선이 지나가며 금정역과 산본역이 위치하고, 이기조 선생 묘, 전주이씨 안양군 묘, 군포시립어린이도서관, 롯데피트인 산본점 등의 시설이 있다. -
군포시의 행정 구역 -
금정동
금정동은 경기도 군포시에 위치한 동으로, 큰 샘에서 유래된 지명을 가지며, 금정역을 통해 철도 교통 이용이 가능하고 군포시청 등 공공기관과 편의시설이 있다. -
대한민국의 행정 구역 -
중구 (부산광역시)
부산광역시 중구는 부산의 중심지로, 과거 왜관이 위치했으며 부산부청과 부산시청이 있었고 현재는 교통의 요지이자 다양한 관광 명소를 보유하고 있다. -
대한민국의 행정 구역 -
한남동
한남동은 서울 용산구에 위치하며 성동구, 이태원동, 보광동과 접하고 한강과 마주하며, 한남대로를 통해 강남과 연결되고 능터골 전설이 전해지며, 한남역, 한강진역과 한남대교, 한남대로, 소월로 등의 교통 요충지이며, 서울한남초등학교, 리움미술관, 백범김구기념관 등 교육 및 문화 시설이 위치한 지역이다.
2. 역사
재궁동은 과천군 금정리 지역이었다. 큰샘이 있으므로 금우물·금물·금정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쟁골, 느티울, 벌금정, 그릇점을 병합하여 금정리라 하였다. 1989년 1월 1일 군포시 승격과 동시에 금정동이 되었다가 1992년 5월 1일 금정동에서 분리되어 재궁동이 되었다.
재궁동이라는 지명은 재궁골에서 나왔는데, 조선후기 한성부사를 역임한 송복산(宋福山:1390-1467)의 묘를 이곳에 쓴 후 그의 둘째 아들 송찬이 세조 2년 단종이 폐위되어 죽임을 당하자 묘 아래에 두어칸 되는 초가집을 짓고 임금을 향한 충성심을 표현하고 자신의 지위나 행적을 숨겨 과천처사라 불렀는데, 그 후 후손인 여산송씨 문중에서 초가집을 다시 지어 재실로 사용하여 이후부터 이 인근을 ‘재궁골’이라 불렀다.
2.1. 지명 유래
재궁동은 과천군 금정리 지역이었다. 큰샘이 있으므로 금우물·금물·금정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쟁골, 느티울, 벌금정, 그릇점을 병합하여 금정리라 하였다. 1989년 1월 1일 군포시 승격과 동시에 금정동이 되었다가 1992년 5월 1일 금정동에서 분리되어 재궁동이 되었다.
재궁동이라는 지명은 재궁골에서 나왔는데, 조선후기 한성부사를 역임한 송복산(宋福山:1390-1467)의 묘를 이곳에 쓴 후 그의 둘째 아들 송찬이 세조 2년 단종이 폐위되어 죽임을 당하자 묘 아래에 두어칸 되는 초가집을 짓고 임금을 향한 충성심을 표현하고 자신의 지위나 행적을 숨겨 과천처사라 불렀는데, 그 후 후손인 여산송씨 문중에서 초가집을 다시 지어 재실로 사용하여 이후부터 이 인근을 ‘재궁골’이라 불렀다.
2.2. 행정 구역 변천
재궁동은 과천군 금정리 지역이었다. 큰샘이 있어 금우물·금물·금정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쟁골, 느티울, 벌금정, 그릇점을 병합하여 금정리라 하였다. 1989년 1월 1일 군포시 승격과 동시에 금정동이 되었다. 1992년 5월 1일 금정동에서 분리되어 재궁동이 되었다. 재궁동이라는 지명은 재궁골에서 나왔는데, 조선후기 한성부사를 역임한 송복산(宋福山:1390-1467)의 묘를 이곳에 쓴 후 그의 둘째 아들 송찬이 세조 2년 단종이 폐위되어 죽임을 당하자 묘하에 두어칸 되는 초려를 짓고 임금에 대한 충성심을 표하고 자신의 지위나 행적을 숨겨 과천처사라 불렀는데, 그 후 후손인 여산송씨 문중에서 초려를 개축하여 재실로 사용하여 이후부터 이 인근을 ‘재궁골’이라 불렀다.
4.1. 초등학교
재궁동에는 초등학교로 군포양정초등학교가 있다.
4.2. 중학교
wikitext
금정중학교가 있다.
4.3. 고등학교
군포고등학교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