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이 (후당)
1. 개요
조경이는 후당 시기의 인물로, 927년 우위상장군 겸 판흥당부사에 임명되었고, 이듬해 추밀사가 되었다. 929년 권지변주군주사를 맡았으나, 같은 해 사망하여 태부로 추증되었다.
| 이름 | 조경이 |
|---|---|
| 한자 표기 | 趙敬怡 |
| 로마자 표기 | Jo Gyeong-yi |
| 출생 | 시기 미상 |
|---|---|
| 사망 | 934년 |
| 직업 | 후당의 관리 |
| 주요 직책 | 鄴都副留守 (留守判官) |
|---|---|
| 역할 | 후당 명종 시기 업도(鄴都, 현재의 허베이성 한단시)의 부유수 후당 말기 권력 투쟁에 연루 |
| 초기 경력 | 후당 명종 시기, 鄴都(鄴都副留守)라는 중요한 직책을 맡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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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적 상황 | 당시 후당은 여러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나는 등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이었다. 조경이는 여몽기(呂夢奇)와 섭서(聶嶼)와 함께 업도를 지키는 임무를 맡았다. |
| 최후 | 934년, 후당의 장군 석경당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조경이는 석경당의 편에 서서 군사를 일으켰다. 그러나 석경당의 반란은 진압되었고, 조경이는 살해되었다. |
| 역사적 기록 | 조경이는 반역자로 기록되었지만, 당시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 속에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 인물로 평가받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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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당의 추밀사 -
안중회
안중회는 후당에서 이사원의 신임을 얻어 권력을 장악했으나, 국정 농단과 오만하고 폭력적인 성격으로 정치적 혼란을 야기하여 해임 후 살해당하고 사후에도 죄를 뒤집어쓴 비참한 최후를 맞은 인물이다. -
후당의 추밀사 -
유연호
이종가를 보좌하며 좌상으로 국정을 운영했던 유연호는 권력 다툼 끝에 이종가에게 제거당하고 이종가의 자살 이후 정신적인 충격을 받아 뇌출혈로 사망한 인물이다. -
929년 사망 -
박언창
박언창은 신라 경명왕의 아들로 사벌주 자사로 부임하여 후사벌을 건국하고 왕을 칭했으나, 후백제의 공격으로 나라가 멸망하고 전사했으며, 그의 아들 박욱은 고려 개국 공신이 되고 후손들은 상주 박씨의 시조가 되었다. -
929년 사망 -
교황 레오 6세
암흑시대 혼란기에 마로치아의 영향으로 선출된 교황 레오 6세는 스플리트 시노드 결정 승인과 달마티아 교회 조사 마무리 후 929년 2월 사망하여 성 베드로 대성전에 안장되었다. -
생년 미상 -
손니 알리
손니 알리는 송가이 제국의 군주로서 니제르 강 유역을 장악한 후 팀북투와 젠네를 정복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제국을 확장했으며, 전통 신앙과 이슬람교 조화, 법에 의한 국가 통제, 무역 확립 등 내치에도 힘썼다. -
생년 미상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2. 생애
조경이는 명종 때 활동한 인물이다. 천성 2년(927년) 8월 4일에 업도부유수에서 우위(右衛)상장군 겸 판흥당부사(判興唐府事)로 임명되었다. 이듬해인 천성 3년(928년) 5월 17일에는 판흥당부사 겸 천웅군 절도부사에서 추밀사가 되었다. 천성 4년(929년) 2월 15일에는 추밀사로서 권지변주군주사(權知汴州軍州事)를 겸임하였으나, 임명된 지 엿새 만인 같은 해 2월 21일(929년 4월 3일)에 사망하였다. 사후 태부(太傅)에 추증되었다.
2.1. 초기 경력
천성 2년 8월 4일(927년 9월 2일), 업도부유수(鄴都副留守) 조경이는 우위(右衛)상장군 겸 판흥당부사(判興唐府事, 오늘날의 하북성 한단시)에 임명되었다.
천성 3년 5월 17일(928년 6월 7일), 판흥당부사 겸 천웅군 절도부사 조경이는 추밀사에 임명되었다.
천성 4년 2월 15일(929년 3월 28일), 추밀사 조경이는 권지변주군주사(權知汴州軍州事)를 맡았다. 그러나 같은 해 2월 21일(929년 4월 3일)에 사망하였다. 그는 태부(太傅)에 추증되었고, 권지변주군주사는 단명전학사(端明殿學士) 조봉이 대신 맡게 되었다.
2.2. 주요 관직
2.2.1. 흥당부 판사 겸 천웅군 절도부사
천성 2년 8월 4일(927년 9월 2일), 업도부유수(鄴都副留守)였던 조경이는 우위(右衛)상장군 겸 판흥당부사(判興唐府事, 오늘날의 하북성 한단시)에 임명되었다.
천성 3년 5월 17일(928년 6월 7일), 판흥당부사 겸 천웅군 절도부사였던 조경이는 추밀사에 임명되었다.
2.2.2. 추밀사
명종 천성 3년 5월 17일(928년 6월 7일), 판흥당부사 겸 천웅군 절도부사였던 조경이는 추밀사에 임명되었다.
이듬해인 천성 4년 2월 15일(929년 3월 28일), 추밀사 조경이는 권지변주군주사(權知汴州軍州事)를 겸하게 되었다. 그러나 불과 엿새 뒤인 같은 해 2월 21일(929년 4월 3일)에 사망하였다. 사후 태부(太傅)에 추증되었고, 그가 맡았던 권지변주군주사 자리는 단명전학사(端明殿學士) 조봉이 이어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