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공산청년회
1. 개요
조선공산청년회는 1929년 5월 만주 길림성에서 결성된 공산주의 청년 단체이다. 이 단체는 허소, 한석훈 등을 중심으로 조직되었으며, 김일성(당시 김성계로 기록)도 핵심 구성원으로 활동했다. 조선공산청년회는 소년단 조직, 반동 단체 및 주중청년동맹 조사 등을 계획했으나, 일본 경찰에 적발되어 활동이 중단되었다. 이 사건은 김일성이 일본 측 기록에 처음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3부 통합 운동 과정에서 촉성회와 협의회 계열 청년 운동으로 분화되는 배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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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
박헌영
박헌영은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 정치인으로, 조선공산당 창당에 참여하고 해방 후 조선공산당 재건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으나, 한국 전쟁 이후 김일성 정권에 의해 처형되어 그의 생애와 활동은 논란과 재평가의 대상이 되고 있다. -
김일성 -
6.25 전쟁
6.25 전쟁은 1950년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되어 1953년 휴전 협정으로 종결되었으며, 한반도의 분단과 막대한 인명 피해를 초래한 한국 전쟁을 의미한다. -
공산주의자 -
폴 랑주뱅
폴 랑주뱅은 프랑스의 물리학자로서 상자성 및 반자성 연구, 초음파 발생, 상대성 이론 전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업적을 남겼으며, 반파시즘 운동에 참여하고 프랑스 인권연맹 회장을 역임하다가 1946년 사망하여 1948년 파리의 팡테옹에 안장되었다. -
공산주의자 -
체 게바라
아르헨티나 출신의 혁명가 체 게바라는 남아메리카 여행 중 사회 불의를 목격하고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하여 쿠바 혁명에 참여, 쿠바 해방 후 혁명 정부에서 활동하다 국제적인 혁명 투쟁을 위해 콩고와 볼리비아에서 게릴라 활동을 벌이다 볼리비아에서 처형되었으며 그의 삶과 사상은 혁명가로서의 헌신과 반제국주의 정신을 상징한다.
2. 조선공산청년회의 조직과 활동 계획
조선공산청년회의 조직과 활동 계획은 길림 주재 일본 총영사 가와고에 시게루(川越茂)]가 1929년 5월 14일 다나카 기이치 외무대신에게 올린 보고서 「조선공산청년회 조직의 건(朝鮮共産靑年會 組織ノ件)」에 나와 있다.
1929년 5월 8일 송화강안(松花江岸)의 한 조선인 집에서 제1회 회의가 열렸다. 5월 10일 길림성(吉林省) 성북산(城北山) 부근에서 제2차 회의를 열고 소년단 조직, 반동단체 책진회 조사, 주중청년동맹 조사, 학생 조사 등의 활동 계획을 결의하였다.
이후 이 조직은 일경에 적발되었고, 김일성은 육문중학을 퇴학당하게 된다.
2.1. 조직 구성
1929년 5월 상순, 길림성성 대동문 밖의 한 조선인 집에서 남만공산청년회원 허소(許笑)·한석훈(韓錫勳),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연락원 이금천(李琴川)과 그의 처 성숙자(成淑子), 남만한인청년총동맹 김동화(金東華), 법정학교 생도 신영근(申永根), 육문학교 생도 김성계(金聖桂, 김일성의 오기), 남만학원 졸업생 차식(車軾) 외 수 명이 모여 조선공산청년회를 조직하고 다음과 같이 역원을 선출하였다. 이들은 정의부 측에 호의를 가진 자들로 보였다.
| 직책 | 이름 |
|---|---|
| 책임비서 | 허소(許笑) |
| 조직부 | 한석훈(韓錫勳) |
| 선전부 | 김동화(金東華) |
| 기타 | 이금천(李琴川), 성숙자(成淑子), 신영근(申永根), 김성계(金聖桂), 차식(車軾) 등 |
2.3. 김일성과의 관련성
조선공산청년회의 조직 및 활동 계획은 길림 주재 일본 총영사 가와고에 시게루(川越茂, 1881—1969)]가 1929년 5월 14일자로 다나카 기이치(田中義一, 1864~1929) 외무대신에게 올린 보고서 「조선공산청년회 조직의 건(朝鮮共産靑年會 組織ノ件)」에 나와 있다. 이 보고서에 나오는 "육문학교(毓文學校) 생도(生徒) 김성계(金聖桂)"가 바로 북한 김일성이며, 김성주(金聖柱)를 잘못 적은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1929년 5월 상순 길림성성 대동문 밖의 한 조선인 집에서 남만공산청년회원,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연락원, 남만한인청년총동맹 회원, 법정학교 및 육문학교 생도, 남만학원 졸업생 등 수 명이 모여 조선공산청년회를 조직하였고, 이때 육문학교 생도 김성계(金聖桂)도 참석하였다.
이후 5월 8일 송화강안의 한 조선인 집에서 열린 제1회 회의와 5월 10일 길림성 성북산 부근에서 열린 제2회 회의에서 소년단 조직, 반동단체 책진회 조사, 주중청년동맹 조사, 학생 조사 등의 안건이 논의되었다. 김성계(김일성)는 이 회의들에서 허소, 신영근 등과 함께 소년단 조직, 주중청년동맹 조사, 학생 조사 담당자로 임명되었다.
이것이 김성주(김일성)가 일본 측 기록에 나오는 최초의 사례이다. 이 조직은 일본 경찰에 적발되었고, 김일성은 육문중학을 퇴학당하게 된다.
3. 3부 통합 운동과 갈등
정의부, 신민부, 참의부 3부의 통합 운동은 크게 두 갈래로 진행되었다. 촉성회(책진회)는 한족총연합회를 거쳐 한국독립당과 한국독립군으로, 협의회는 국민부, 조선혁명당, 조선혁명군으로 이어졌다. 조선공산청년회 회원들은 책진회와 주중청년동맹에 반감을 느껴 정의부(국민부)에 우호적이었다고 한다.
3.1. 촉성회(책진회) 계열
정의부, 신민부, 참의부 3부 통합 운동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뉘었다. 그중 촉성회(책진회) 계열은 한족총연합회를 거쳐 한국독립당 및 한국독립군으로 이어졌으며, 주로 경상도 출신 인사들이 중심이 되었다.
| 재만 운동 단체 | 민족 운동 (민족 유일당 조직 운동) | 통합 결과 | |
|---|---|---|---|
| 촉성회 | 정의부 (탈퇴 간부) | ||
| 신민부 (군정파) | |||
| 참의부 (주력) | |||
| 기타 | |||
| 한족총연합회 → 한국독립당 → 한국독립군 (경상도파 중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