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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공산청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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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공산청년회는 1929년 5월 만주 길림성에서 결성된 공산주의 청년 단체이다. 이 단체는 허소, 한석훈 등을 중심으로 조직되었으며, 김일성(당시 김성계로 기록)도 핵심 구성원으로 활동했다. 조선공산청년회는 소년단 조직, 반동 단체 및 주중청년동맹 조사 등을 계획했으나, 일본 경찰에 적발되어 활동이 중단되었다. 이 사건은 김일성이 일본 측 기록에 처음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3부 통합 운동 과정에서 촉성회와 협의회 계열 청년 운동으로 분화되는 배경이 되었다.

2. 조선공산청년회의 조직과 활동 계획

조선공산청년회의 조직과 활동 계획은 길림 주재 일본 총영사 가와고에 시게루(川越茂)]가 1929년 5월 14일 다나카 기이치 외무대신에게 올린 보고서 「조선공산청년회 조직의 건(朝鮮共産靑年會 組織ノ件)」에 나와 있다.[2]

1929년 5월 8일 송화강안(松花江岸)의 한 조선인 집에서 제1회 회의가 열렸다.[3] 5월 10일 길림성(吉林省) 성북산(城北山) 부근에서 제2차 회의를 열고 소년단 조직, 반동단체 책진회[4] 조사, 주중청년동맹[5] 조사, 학생 조사 등의 활동 계획을 결의하였다.

이후 이 조직은 일경에 적발되었고, 김일성은 육문중학을 퇴학당하게 된다.

2. 1. 조직 구성

1929년 5월 상순, 길림성성 대동문 밖의 한 조선인 집에서 남만공산청년회원 허소(許笑)·한석훈(韓錫勳),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연락원 이금천(李琴川)과 그의 처 성숙자(成淑子), 남만한인청년총동맹 김동화(金東華), 법정학교 생도 신영근(申永根), 육문학교 생도 김성계(金聖桂, 김일성의 오기), 남만학원 졸업생 차식(車軾) 외 수 명이 모여 조선공산청년회를 조직하고 다음과 같이 역원을 선출하였다.[2][3] 이들은 정의부 측에 호의를 가진 자들로 보였다.[2]

직책이름
책임비서허소(許笑)
조직부한석훈(韓錫勳)
선전부김동화(金東華)
기타이금천(李琴川), 성숙자(成淑子), 신영근(申永根), 김성계(金聖桂), 차식(車軾) 등


2. 2. 활동 계획

1929년 5월 10일, 길림성(吉林省) 성북산(城北山) 부근에서 열린 제2차 회의에서 다음과 같은 사항이 결의되었다.[3]

담당내용
허소(許笑)ㆍ차식(車軾)ㆍ신영근(申永根)ㆍ김성계(金聖桂)소년단(少年團) 조직
김동화(金東華)ㆍ차식(車軾)반동단체(反動團體) 책진회(策進會)[4] 조사 (간부, 회원 수, 발간 문서 조사)
허소(許笑), 김성계(金聖桂)주중청년동맹(住中靑年同盟)[5] 조사 (간부, 강령, 규약, 회원 및 발간 문서 조사)
신영근(申永根), 김성계(金聖桂)학생 조사 (학교별 성명, 연령, 본적, 현주소 조사)
기타위와 같은 조사 보조 및 보고 (조사 기간: 약 1개월, 1주일마다 책임비서에게 보고)


2. 3. 김일성과의 관련성

조선공산청년회의 조직 및 활동 계획은 길림 주재 일본 총영사 가와고에 시게루(川越茂, 1881—1969)]가 1929년 5월 14일자로 다나카 기이치(田中義一, 1864~1929) 외무대신에게 올린 보고서 「조선공산청년회 조직의 건(朝鮮共産靑年會 組織ノ件)」에 나와 있다.[2] 이 보고서에 나오는 "육문학교(毓文學校) 생도(生徒) 김성계(金聖桂)"가 바로 북한 김일성이며, 김성주(金聖柱)를 잘못 적은 것이다.[3]

만주 길림(吉林) 주재 일본 총영사 가와고에 시게루(川越茂, 1881—1969)]가 1929년 5월 14일자로 다나카 기이치(田中義一, 1864~1929) 외무대신에게 올린 보고서 「조선공산청년회 조직의 건(朝鮮共産靑年會 組織ノ件)」 : 여기에 나온 "육문학교(毓文學校) 생도(生徒) 김성계(金聖桂)"가 바로 북한 김일성이며, 김성주(金聖柱)를 잘못 적은 것이다. 이것이 김성주가 일본측 기록에 나오는 최초의 사례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1929년 5월 상순 길림성성 대동문 밖의 한 조선인 집에서 남만공산청년회원,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연락원, 남만한인청년총동맹 회원, 법정학교 및 육문학교 생도, 남만학원 졸업생 등 수 명이 모여 조선공산청년회를 조직하였고, 이때 육문학교 생도 김성계(金聖桂)도 참석하였다.

이후 5월 8일 송화강안의 한 조선인 집에서 열린 제1회 회의와 5월 10일 길림성 성북산 부근에서 열린 제2회 회의에서 소년단 조직, 반동단체 책진회[4] 조사, 주중청년동맹[5] 조사, 학생 조사 등의 안건이 논의되었다. 김성계(김일성)는 이 회의들에서 허소, 신영근 등과 함께 소년단 조직, 주중청년동맹 조사, 학생 조사 담당자로 임명되었다.

이것이 김성주(김일성)가 일본 측 기록에 나오는 최초의 사례이다. 이 조직은 일본 경찰에 적발되었고, 김일성은 육문중학을 퇴학당하게 된다.

3. 3부 통합 운동과 갈등

정의부, 신민부, 참의부 3부의 통합 운동은 크게 두 갈래로 진행되었다. 촉성회(책진회)는 한족총연합회를 거쳐 한국독립당한국독립군으로, 협의회는 국민부, 조선혁명당, 조선혁명군으로 이어졌다. 조선공산청년회 회원들은 책진회와 주중청년동맹에 반감을 느껴 정의부(국민부)에 우호적이었다고 한다.[1]

3부 통합 운동의 결과[1]
구 আসেনি통합 결과
촉성회 (책진회)한족총연합회 → 한국독립당한국독립군
협의회국민부조선혁명당 → 조선혁명군


3. 1. 촉성회(책진회) 계열

정의부, 신민부, 참의부 3부 통합 운동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뉘었다. 그중 촉성회(책진회) 계열은 한족총연합회를 거쳐 한국독립당한국독립군으로 이어졌으며, 주로 경상도 출신 인사들이 중심이 되었다.[1]

3부 통합 운동의 두 갈래
재만 운동 단체민족 운동 (민족 유일당 조직 운동)통합 결과
촉성회정의부 (탈퇴 간부)
신민부 (군정파)
참의부 (주력)
기타
한족총연합회 → 한국독립당한국독립군 (경상도파 중심)


3. 2. 협의회 계열

정의부, 신민부, 참의부 3부의 통합 운동은 두 갈래로 진행되었는데, 협의회 쪽은 국민부, 조선혁명당, 조선혁명군 체제로 이어졌다. 조선공산청년회 회원들은 정의부(국민부) 측에 우호적이었다고 한다. 주로 평안도 출신 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협의회를 이끌었다.[1]

3부 통합 운동의 두 갈래
재만 운동 단체민족유일당조직운동통합 운동 결과
촉성회정의부 (탈퇴 간부), 신민부 (군정파), 참의부 (주력), 기타한국독립당, 한국독립군
협의회정의부 (주력), 신민부 (민정파), 참의부 (일파), 기타국민부, 조선혁명당, 조선혁명군


3. 3. 청년 운동의 분화

정의부, 신민부, 참의부 3부 통합 운동은 두 갈래로 진행되었다. 촉성회(책진회)는 한족총연합회, 한국독립당, 한국독립군 체제로, 협의회는 국민부, 조선혁명당, 조선혁명군 체제로 이어졌다.[1]

3부 통합 운동 과정에서의 청년 운동 분화
구분내용
주중국한인청년동맹촉성회(책진회) 지지
남만한인청년총동맹협의회(국민부) 지지
반동맹파(북만조선인청년동맹)일부 촉성회 지지

[1]

참조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조선공산청년회(朝鮮共産靑年會) http://encykorea.aks[...] 한국학중앙연구원
[2] 파일 「조선공산청년회 조직의 건(朝鮮共産靑年會 組織ノ件)」 外務省警察史 / 滿洲ノ部 / 在吉林總領事館及敦化分館
[3] 서적 김일성 평전(金日成 評傳) - 허구와 실상 북한연구소 1987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민족유일당재만책진회(民族唯一黨在滿策進會) http://encykorea.aks[...] 한국학중앙연구원
[5] 문서 주중청년동맹(住中靑年同盟)은 3부 통합 논의 당시 정의부(正義府)의 주류 세력과 반대 입장이었던 책진회(策進會)를 지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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