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요
1. 개요
조요는 전한 시대의 인물로, 고조의 부새어사였다. 고조를 보좌하며 조은왕을 위해 계책을 세웠고, 진희의 난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워 강읍후에 봉해졌다. 혜제 치하에서도 어사대부 직을 유지했으나, 고황후가 정권을 잡은 후 조은왕을 도운 일로 처벌받아 면직되고 작위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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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관한 -
광서제
광서제는 도광제의 손자이자 순친왕 혁현의 아들로, 1875년 청나라의 황제가 되었으며, 서태후의 섭정 아래 무술변법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유폐된 채 사망했다. -
역사에 관한 -
2013년
2013년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 교황 사임, 북한 핵실험, 용산 개발 사업 부도, 윤창중 사건, 스노든 폭로, 김연아 우승, 방탄소년단 데뷔, 넬슨 만델라 사망 등 국내외적으로 다양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사건들이 발생한 해이다. -
전한의 귀족 -
장량
장량은 전국시대 말기부터 초한쟁패기를 거쳐 전한 초기에 활약한 한나라 귀족 출신 인물로, 유방을 도와 한나라 건국에 큰 공을 세우고 유후에 봉해진 뛰어난 지략가이자 책사이다. -
전한의 귀족 -
소하
소하는 전한 초기의 정치가로 유방을 도와 한나라 건국에 공을 세웠으며, 군수 보급, 내정 담당, 한신 천거, 승상으로서 국가 기틀을 다지는 데 헌신한 인물이다. -
기원전 2세기 중국 사람 -
신도가
신도가는 전한 시대의 무관 출신으로, 항우와의 싸움과 영포의 난에 참여하고 혜제 때 회양태수를 거쳐 승상에 올랐으며, 청렴한 성품으로 황제의 총애를 받던 등통을 처벌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조조와의 갈등 끝에 죽음을 맞이하여 절후의 시호를 받았다. -
기원전 2세기 중국 사람 -
사마천
사마천은 중국 전한 시대의 역사가, 천문학자, 역법가로서 중국 최초의 통사로 평가받는 『사기』를 저술하여 기전체를 확립하고 역사 서술과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이릉 변호 사건으로 궁형을 받는 고난을 겪었으며 태초력 제정에도 참여하는 등 천문학과 역법에도 업적을 남겼다.
2. 행적
조요는 원래 고조의 부새어사였다. 고조가 혜제 대신 조은왕을 태자로 삼으려다 포기하고 조은왕을 조나라 왕에 봉했는데, 이후 조은왕이 해를 입을까 염려했다. 조요는 고조를 모시다가 고조가 슬픈 노래를 부르자, 여러 신하들 중에서 홀로 고조의 근심을 알아챘다. 고조가 해결책을 묻자 조나라 승상으로 주창을 추천했다. 고조는 주창 대신 조요를 어사대부로 삼았다. 진희의 난을 진압하여 강읍후에 봉해졌다.
혜제 치하에서도 어사대부로 섬겼다. 고후 원년, 고황후가 정권을 잡자, 조은왕을 위해 계책을 세워준 것 때문에 원망을 받아 처벌을 받고 어사대부에서 면직됐으며 작위를 잃었다.
2.1. 초기 생애와 고조 시대
조요는 본래 고조의 부새어사였다. 고조가 혜제 대신 조은왕을 태자로 삼으려다 결국은 포기하고 조은왕을 조나라 왕에 봉했는데, 나중에 조은왕이 해를 입을 것을 염려했다. 조요는 고조를 모시다가 고조가 즐거워하지 않고 슬픈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고, 여러 신하들 중에서 홀로 고조가 근심하는 원인을 지적했다. 고조가 해결책을 묻자, 조요는 귀하고 강한 신하를 조나라 승상으로 삼도록 진언하면서 어사대부 주창을 추천했다. 고조는 주창 대신 조요를 어사대부로 삼았다. 진희의 난 진압에서 공적을 세워 강읍후(江邑侯)에 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