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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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요는 전한 시대의 인물로, 고조의 부새어사였다. 고조를 보좌하며 조은왕을 위해 계책을 세웠고, 진희의 난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워 강읍후에 봉해졌다. 혜제 치하에서도 어사대부 직을 유지했으나, 고황후가 정권을 잡은 후 조은왕을 도운 일로 처벌받아 면직되고 작위를 잃었다.

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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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행적

조요는 원래 고조의 부새어사였다. 고조가 혜제 대신 조은왕을 태자로 삼으려다 포기하고 조은왕을 조나라 왕에 봉했는데, 이후 조은왕이 해를 입을까 염려했다. 조요는 고조를 모시다가 고조가 슬픈 노래를 부르자, 여러 신하들 중에서 홀로 고조의 근심을 알아챘다. 고조가 해결책을 묻자 조나라 승상으로 주창을 추천했다. 고조는 주창 대신 조요를 어사대부로 삼았다. 진희의 난을 진압하여 강읍후에 봉해졌다.

혜제 치하에서도 어사대부로 섬겼다. 고후 원년, 고황후가 정권을 잡자, 조은왕을 위해 계책을 세워준 것 때문에 원망을 받아 처벌을 받고 어사대부에서 면직됐으며 작위를 잃었다.

2.1. 초기 생애와 고조 시대

조요는 본래 고조의 부새어사였다. 고조가 혜제 대신 조은왕을 태자로 삼으려다 결국은 포기하고 조은왕을 조나라 왕에 봉했는데, 나중에 조은왕이 해를 입을 것을 염려했다. 조요는 고조를 모시다가 고조가 즐거워하지 않고 슬픈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고, 여러 신하들 중에서 홀로 고조가 근심하는 원인을 지적했다. 고조가 해결책을 묻자, 조요는 귀하고 강한 신하를 조나라 승상으로 삼도록 진언하면서 어사대부 주창을 추천했다. 고조는 주창 대신 조요를 어사대부로 삼았다. 진희의 난 진압에서 공적을 세워 강읍후(江邑侯)에 봉해졌다.

2.2. 혜제 시대와 고후 시대

조요는 혜제 치하에서도 어사대부 직을 유지했다. 혜제가 죽고 고후 원년(기원전 187년)에 고황후가 정권을 잡자, 조은왕을 위해 계책을 세워준 것 때문에 고황후에게 원망을 사 처벌을 받고 어사대부에서 면직됐으며 작위를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