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조희연 (조선귀족)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본문

조희연(趙羲淵, 1856년 5월 26일 ~ 1915년 7월 20일)은 조선 말기의 군인이자 대한제국의 관료로, 일제강점기에 조선귀족 작위를 받았습니다. 본관은 평양(平壤)이며, 자는 심원(心源), 호는 기원(杞園)입니다.
생애:


  • 1874년 무과에 급제하여 무관으로 근무했습니다.
  • 1894년 갑오농민운동(동학농민운동) 당시 정토군(征討軍)을 조직하여 군량 및 군비를 지원했습니다.
  • 갑오경장 때 장위사에 임명되었고, 김홍집의 친일 내각에서 군무대신 서리, 군무대신, 군부대신 등을 역임했습니다.
  • 아관파천으로 인해 일본으로 망명하여 10여 년간 생활했습니다.
  • 1907년 귀국하여 궁내부 특진관, 표훈원 총재 등을 역임했습니다.
  • 1910년 한일병합 당시 일본 정부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았으나, 1915년 5월 작위를 반납했습니다.
  •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을 지냈습니다.
  • 1887년 기기국 위원으로 중국 상하이, 홍콩, 일본 오사카와 도쿄 등지를 방문하여 무기 및 군사 시설들을 견학했습니다.

사후:

  • 조희연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되었습니다.
  • 사망 당시 적십자애국부인회 조선본부 평의원으로 있었습니다.

참고:

  • 조선총독부는 체면 유지를 위해 조희연에게 작위 반납을 종용했고, 결국 조희연은 작위를 반납하여 자식에게 세습되지 않았습니다.
  • 서울시 교육감 조희연과 한자 이름이 같지만, 동명이인이며 출생연도는 100년 차이가 납니다.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