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아키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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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존 아키부아는 우간다의 육상 선수로, 1972년 뮌헨 올림픽 400m 허들에서 47.82초의 세계 신기록으로 우승하며 우간다의 첫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했다. 경찰관으로 이디 아민 정권에서 승진하고 집을 받았으나, 정권 붕괴 후 협력자로 간주될 것을 두려워하여 케냐로 망명했다. 케냐 난민 캠프에서 풀려난 후 독일에서 푸마를 위해 일했으며, 1980년 올림픽에 다시 출전한 후 우간다로 돌아와 코치로 활동했다. 아키부아는 47세에 사망했으며, 그의 조카는 국제 축구 선수 데이비드 오부아이다.

존 아키부아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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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아키부아 c. 1972
이름존 아키부아
별칭해당사항 없음
출생일1949년 12월 3일
출생지리라, 우간다
사망일1997년 6월 20일 (향년 47세)
사망지캄팔라, 우간다
1.88 m
몸무게77 kg
종목400m, 400m 허들
소속 클럽해당사항 없음
모교해당사항 없음
개인 최고 기록
400m45.82 (1976년)
400m 허들47.82 (1972년)
메달 기록
올림픽금메달, 1972년 뮌헨, 400m 허들
올아프리카 게임금메달, 1973년 라고스, 400m 허들
은메달, 1978년 알제, 400m 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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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및 경력

존 아키부아는 한 아버지와 여덟 명의 아내 사이에서 태어난 43명의 자녀 중 한 명으로 성장했다. 아키부아는 단거리 허들 선수로 육상 경력을 시작했지만, 1968년 올림픽 출전 자격을 얻지 못했다. 영국 출신 육상 코치 말콤 아놀드의 코치를 받으며 400m 허들에 입문했다. 1970년 코먼웰스 게임에서 4위를 차지하고 1971년 최고 기록을 세웠지만, 경쟁 경험이 부족하여 1972년 하계 올림픽 뮌헨에서는 큰 우승 후보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승에서 우승하여 가장 안쪽 레인에서 달리고도 47.82초의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그는 우간다와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의 보이콧으로 인해 1976년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했고, 미국의 라이벌 에드윈 모제스와의 대결도 놓쳤다.

존 아키부아(1972년 뮌헨 올림픽)
존 아키부아(1972년 뮌헨 올림픽)


경찰관이었던 아키부아는 우간다 대통령 이디 아민에 의해 승진되었고, 그의 운동 능력에 대한 보상으로 집을 받았다. 아민 정권이 붕괴되자 그는 협력자로 간주될 것을 두려워하여 가족과 함께 케냐로 도망쳤다. 이는 그가 랑기 부족의 일원이었기 때문인데, 이 부족의 많은 사람들이 아민에 의해 박해를 받았기 때문이다. 반면 아키부아는 아민에 의해 잘 지내고 있는 랑기족의 예로 언급되었다. 그러나 케냐에서 그는 난민 캠프에 수용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신발 제조업체 푸마에 의해 풀려났고, 독일에서 3~4년 동안 푸마를 위해 일하며 살았다. 그는 1980년 하계 올림픽에서 다시 한번 우간다를 대표했다. 이후 그는 우간다로 돌아와 코치가 되었다.

아키부아는 미망인이 된 후 47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11명의 자녀가 그의 뒤를 따랐다. 그는 국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그의 조카는 국제 축구 선수 데이비드 오부아이며, 그의 형제 로렌스 오그왕은 1956년 올림픽에서 멀리뛰기와 세단뛰기에 출전했다.

"아키부아"라는 구절은 우간다에서 구어체로 "달린다"는 의미로 사용되게 되었다.

2.1. 초기 생애

존 아키부아는 한 아버지와 여덟 명의 아내 사이에서 태어난 43명의 자녀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단거리 허들 선수로 육상 경력을 시작했지만, 1968년 올림픽 출전 자격을 얻지 못했다. 이후 영국 출신 육상 코치 말콤 아놀드의 지도를 받으며 400m 허들에 입문했다.

2.2. 1972년 뮌헨 올림픽 금메달

존 아키부아는 영국 출신 육상 코치 말콤 아놀드의 지도를 받으며 400m 허들에 입문하였다. 1970년 코먼웰스 게임에서 4위를 차지하고 1971년 최고 기록을 세웠지만, 경쟁 경험이 부족하여 1972년 하계 올림픽 뮌헨에서는 큰 우승 후보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승에서 가장 안쪽 레인에서 달리고도 47.82초의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하였다. 이는 우간다의 첫 올림픽 금메달이었다. 그는 우간다와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의 보이콧으로 인해 1976년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했고, 미국의 라이벌 에드윈 모제스와의 대결도 놓쳤다.

존 아키부아(1972년 뮌헨 올림픽)
존 아키부아(1972년 뮌헨 올림픽)

2.3. 이디 아민 정권 시기

존 아키부아는 경찰관으로, 이디 아민 대통령에 의해 승진되었고 운동 능력에 대한 보상으로 집을 받았다. 아민 정권이 붕괴되자 랑기 부족 출신이었던 그는 협력자로 간주될 것을 두려워하여 가족과 함께 케냐로 도망쳤다. 랑기족은 아민에게 박해받는 부족이었지만, 아키부아는 아민에 의해 잘 지내고 있는 랑기족의 예로 언급되기도 했다. 그러나 케냐에서 그는 난민 캠프에 수용되었다가 신발 제조업체 푸마에 의해 풀려나 독일에서 3~4년 동안 푸마를 위해 일하며 살았다.

2.4. 망명과 귀국

존 아키부아는 이디 아민 정권이 붕괴되자 협력자로 간주될 것을 두려워하여 가족과 함께 케냐로 도망쳤다. 이는 그가 랑기 부족의 일원이었기 때문인데, 이 부족의 많은 사람들이 아민에 의해 박해를 받았기 때문이다. 반면 아키부아는 아민에 의해 잘 지내고 있는 랑기족의 예로 언급되었다. 그러나 케냐에서 그는 난민 캠프에 수용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신발 제조업체 푸마에 의해 풀려났고, 독일에서 3~4년 동안 푸마를 위해 일하며 살았다. 1980년 하계 올림픽에서 다시 한번 우간다를 대표했다. 이후 그는 우간다로 돌아와 코치가 되었다.

3. 사망

4. 개인 기록

* 400m 허들 - 47초 82 (1972년)

5. 유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