즈엉딘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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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즈엉딘응에는 10세기 초 안남의 장군으로, 애주 출신이다. 쿡하오 휘하에서 성장하여 930년 남한과의 전투에서 곡승미가 패배한 후, 931년 양정예가 남한에 반기를 들고 자립하여 하노이를 공격, 교주 자사 이진을 추방했다. 937년에는 봉주의 호족 끼에우꽁띠엔에게 살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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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즈엉딘응에는 타인호아 출신의 호족으로, 10세기 초반 안남에서 정해군 절도사를 칭한 곡호 휘하의 장군이었다. 930년 곡호의 아들 곡승미가 남한과의 싸움에서 패하고 포로로 잡혔으나, 931년 남한을 배경으로 자립하였다. 937년 3월, 봉주의 호족 교공선에게 살해당했다.

2.1. 초기 생애와 출신

즈엉딘응에는 타인호아 출신의 호족으로, 10세기 초반 안남에서 정해군 절도사를 칭한 곡호 휘하의 장군이었다. 930년 곡호의 아들 곡승미가 남한의 이수용, 양극정과의 싸움에서 패하고 포로로 잡혔다. 931년 12월, 즈엉딘응에는 남한에 반기를 들고 자립하여 3,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대라성을 공략, 교주자사 이진을 쫓아냈다. 937년 3월, 봉주의 호족 교공선에게 살해당했다.

2.2. 남한과의 전쟁과 자립

930년, 곡호의 아들 곡승미가 남한의 이수鄘중국어, 梁克貞중국어 등에게 패하여 포로로 잡혔다. 931년 12월, 양정예는 남한에 반기를 들고 자립하여 3,000명의 병사를 이끌고 대라성을 공격해 교주자사 이진을 몰아냈다.

2.3. 죽음

937년 3월, 봉주(峰州)의 호족 출신 부하 교공선에게 살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