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 도통리 청자요지
1. 개요
진안 도통리 청자요지는 10~11세기에 걸쳐 조성된 초기 청자 요지이다. 호남 지역 최대 규모의 초기 청자 가마로, 벽돌가마와 진흙가마가 모두 확인되어 우리나라 청자 발생과 변천 과정을 보여준다. 다양한 초기 청자와 요도구, 명문이 새겨진 청자, 고누놀이가 새겨진 갑발 등 유물이 출토되어 당시 중국과의 교류 관계와 공예 기술 수준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벽돌가마는 전북 지역 최초의 예시이며, 초기 청자 요지의 연구에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 이름 | 진안 도통리 청자요지 |
|---|---|
| 한자 표기 | 鎭安 道通里 靑瓷窯址 |
| 유형 | 사적 |
| 지정 번호 | 551 |
| 지정일 | 2019년 9월 2일 |
| 주소 |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성수면 도통리 산40-1번지 등 |
| 면적 | 3,691m2 |
| 수량 | 2필지 |
| 관리 | 장수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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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유적의 위치 및 분포
진안 도통리 청자요지는 전북 진안군 성수면, 백운면에 걸쳐 있는 내동산에서 서북쪽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 끝자락, 중평마을 안에 있다. 중평마을 전역에는 청자와 갑발 조각 등이 널리 분포하고 있으며, 마을 일부에는 대규모의 요도구 퇴적층이 아직 남아있다.
3. 발굴 조사
지표조사 등을 통해 요지의 존재는 이미 알려져 있었으며, 2013년 최초의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후 2017년까지 총 5차례의 시·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 결과, 진안 도통리 청자요지는 10~11세기에 걸쳐 초기청자를 생산했던 가마터로, 우리나라에서 처음 청자를 제작하던 시기에 청자를 생산했던 벽돌가마(전축요, 塼築窯)와 진흙가마(토축요, 土築窯)가 둘 다 확인되었다. 이러한 가마 축조 양식의 변화는 벽돌가마에서 진흙가마로 변천하는 한반도 초기청자 가마의 전환기적인 양상을 보여준다.
조사된 벽돌·진흙가마는 총 길이 43m로, 호남지역 최대 규모의 초기 청자가마이며, 최초 가마의 벽체를 벽돌로 축조하였다가 내벽을 진흙·갑발을 활용하여 개보수하는 방식으로 요업을 이어갔음을 확인하였다. 또 다른 가마인 진흙가마는 총 길이 13.4m로, 벽돌 없이 진흙과 갑발로 구축되어 있다.
가마 내부와 대규모 폐기장에서는 해무리굽완, 잔, 잔받침, 주전자, 꽃무늬 접시 등 다양한 초기청자와 다량의 벽돌, 갑발 등 요도구들이 발견되었다. 아울러 ‘大(대)’자명 등의 명문이 새겨진 청자를 비롯하여 고누놀이가 새겨진 갑발, 청자가마의 배연공으로 추정되는 벽체 조각 등의 유물도 출토되었다.
4. 가마의 구조 및 특징
진안 도통리 청자요지에서는 10~11세기에 걸쳐 초기청자를 생산했던 가마터가 발견되었는데, 여기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청자를 제작하던 시기에 사용된 벽돌가마(전축요, 塼築窯)와 진흙가마(토축요, 土築窯)가 모두 확인되었다. 이러한 가마 축조 양식의 변화는 벽돌가마에서 진흙가마로 변천하는 한반도 초기청자 가마의 전환기적인 양상을 보여준다.
조사된 벽돌·진흙가마는 총 길이 43m로, 호남지역 최대 규모의 초기 청자가마이다. 최초 가마의 벽체는 벽돌로 축조되었다가 내벽을 진흙과 갑발을 활용하여 개보수하는 방식으로 요업이 이어졌다. 또 다른 가마인 진흙가마는 총 길이 13.4m로, 벽돌 없이 진흙과 갑발로만 구축되어 있다.
5. 출토 유물
가마 내부와 대규모 폐기장에서는 해무리굽완, 잔, 잔받침, 주전자, 꽃무늬 접시 등 다양한 초기 청자와 다량의 벽돌, 갑발 등 요도구들이 발견되었다. 아울러 ‘大(대)’자명 등의 명문이 새겨진 청자, 고누놀이가 새겨진 갑발, 청자가마의 배연공으로 추정되는 벽체 조각 등의 유물도 출토되었다.
시굴 조사를 통해 6m 가까이 퇴적된 폐기장이 확인되었으며, 여기에서는 선해무리굽, 중국식 해무리굽 등을 갖는 청자편들과 함께 벽돌, 요도구 등이 출토되었다. 초기 청자 요지인 용인 서리와 시흥 방산동과 같은 벽돌 가마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벽돌 가마는 전북 지역 최초의 예이다.
6. 역사적, 학술적 가치
진안 도통리 청자요지는 초기 청자를 생산했던 가마의 변화 양상 등을 통해 우리나라 초기 청자의 발생과 변천 과정을 보여주고 있어 초기 청자 연구에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높은 유물로는 시굴 조사를 통해 확인된 6m 가까이 퇴적된 폐기장이 있으며, 여기에서는 선해무리굽, 중국식해무리굽 등을 갖는 청자 조각들과 함께 벽돌, 요도구 등이 출토되었다.
용인 서리와 시흥 방산동과 같은 초기 청자 요지에서 사용된 벽돌 가마는 전북 지역 최초의 예이다. 벽돌 가마의 사용과 함께 출토된 유물들은 중국과의 교류 관계 등을 살필 수 있는 학술적, 공예사적으로 중요한 자료이다.
내동산에서 서북쪽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 끝에 10~11세기에 걸쳐 조성된 진안 도통리 청자 요지는 벽돌 가마와 진흙 가마가 모두 확인되어 우리나라 청자의 발생과 전파 과정 등을 다각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
7. 지정 현황
진안 도통리 청자 요지는 내동산에서 서북쪽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 끝에 10~11세기에 걸쳐 조성된 초기 청자 요지로, 벽돌가마와 진흙가마가 모두 확인되어 우리나라 청자의 발생과 전파 과정 등을 다각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높은 유적이다. 시굴 조사를 통해 6m 가까이 퇴적된 폐기장이 확인되었으며, 여기에서는 선해무리굽, 중국식해무리굽 등을 갖는 청자편들과 함께 벽돌, 요도구 등이 출토되었다. 용인 서리와 시흥 방산동과 같은 벽돌가마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벽돌가마는 전북 지역 최초의 예이다. 벽돌가마의 사용과 함께 출토된 유물들은 중국과의 교류 관계 등을 살필 수 있는 학술적, 공예사적으로 중요한 자료이므로 지정 보존할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