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 (영진)
1. 개요
진중은 공백의 아들로, 기원전 845년 아버지의 사망으로 진나라의 군주가 되었다. 기원전 822년 주 선왕에게 대부로 임명되어 서융을 토벌하려 했으나, 서융과의 전투에서 사망했다. 진중 재위 기간 동안 진나라는 마차를 얻고 예법과 음악이 발전하며 국력이 강성해지기 시작했다. 그의 장남인 진 장공이 뒤를 이었고, 주 평왕은 진중의 막내 아들인 공자 강에게 하양 땅을 하사하여 양나라를 세우게 했다.
-
진나라의 군주 -
진 목공
진 목공은 춘추 시대 진나라의 군주로, 백리해를 등용하여 국정을 맡기고 진나라 내정에 깊숙이 관여했으며 서융을 정벌하여 세력을 확장했으나 중원 진출에는 실패했고, 사후 많은 가신이 순장되었다. -
진나라의 군주 -
진 효공
진 효공은 상앙의 변법을 통해 국력을 신장시키고 함양으로 천도하여 진나라가 전국 시대 강대국으로 성장하는 기틀을 마련한 군주이다. -
기원전 9세기 중국의 군주 -
주 선왕
주 선왕은 서주 시대의 왕으로, 주 정공과 소 목공의 보좌를 받아 국세를 중흥시키고 동생 우를 정나라 군주로 봉했으며, 사주편을 저술하여 전서를 완성했다. -
기원전 9세기 중국의 군주 -
주 효왕
주 효왕은 주 목왕의 아들이자 의왕의 숙부로, 의왕 사후 주 왕위에 즉위하여 서견구의 비자에게 말 관리를 맡기고 진의 땅을 하사했으며, 사후에는 종손인 이왕이 제후들에 의해 옹립되었다. -
생년 미상 -
손니 알리
손니 알리는 송가이 제국의 군주로서 니제르 강 유역을 장악한 후 팀북투와 젠네를 정복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제국을 확장했으며, 전통 신앙과 이슬람교 조화, 법에 의한 국가 통제, 무역 확립 등 내치에도 힘썼다. -
생년 미상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2. 생애
진중은 공백의 아들로, 기원전 845년 아버지 공백이 사망하자 진나라의 군주 자리를 계승했다. 기원전 842년 주 려왕(周勵王)이 무도하여 제후 중에 반란을 일으키는 자가 있었으며, 서융(西戎)도 주 왕실에 반기를 들고 견구의 대락 일족을 멸하였다.
기원전 822년, 주나라의 선왕이 진중을 대부로 임명하여 서융을 토벌하게 했지만, 반대로 진중은 서융에게 살해당했다. 진중이 재위하던 시기에 진나라 사람들은 마차를 얻을 수 있었고, 예법과 음악이 생겨나고 신하들이 진나라를 섬기면서 강성해지기 시작하였다.
진중에게는 다섯 아들이 있었는데, 장남인 장공(莊公)이 계승하였다. 주 평왕(周平王) 시기에 들어와서 진중의 공을 높게 평가하여 진중의 막내 아들인 공자 강(康)을 하양(夏陽)의 땅을 하사하였고, 양(梁)나라를 세웠다.
2.1. 초기 생애와 즉위
진중은 공백의 아들로, 기원전 845년 아버지 공백이 사망하자 진나라의 군주 자리를 계승했다. 기원전 842년 주 려왕(周勵王)이 무도하여 제후 중에 반란을 일으키는 자가 있었으며, 서융(西戎)도 주 왕실에 반기를 들고 견구의 대락 일족을 멸하였다.
기원전 822년, 주나라의 선왕이 진중을 대부로 임명하여 서융을 토벌하게 했지만, 반대로 진중은 서융에게 살해당했다. 진중이 재위하던 시기에 진나라 사람들은 마차를 얻을 수 있었고, 예법과 음악이 생겨나고 신하들이 진나라를 섬기면서 강성해지기 시작하였다.
2.2. 서융과의 전쟁과 죽음
기원전 845년, 아버지 공백이 죽자 진중(秦仲)이 뒤를 이었다. 기원전 842년, 주 려왕이 무도하여 제후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서융도 주 왕실에 반기를 들고 견구의 대락/大骆중국어 일족을 멸망시켰다.
기원전 824년, 주 선왕이 진중을 대부(大夫)로 삼아 서융 토벌을 명했으나, 기원전 822년, 진중은 서융과의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진중에게는 다섯 아들이 있었는데, 장남인 장공이 계승하였다. 주 평왕 시기에는 진중의 공을 높게 평가하여 막내 아들인 공자 강(康)에게 하양(夏陽) 땅을 하사하였고, 공자 강은 양나라를 세웠다. 진중이 재위하던 시기에 진나라는 마차를 얻고 예법과 음악이 생겨나 신하들이 진나라를 섬기면서 강성해지기 시작했다.
2.3. 사후
진중은 아버지 공백이 죽은 기원전 845년에 진나라 제후 자리를 계승하였다. 기원전 824년 주 선왕(周宣王)은 진중을 대부(大夫)로 삼아 서융을 토벌하게 하였으나, 기원전 822년 진중은 서융과의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진중에게는 다섯 아들이 있었는데, 장남인 장공(莊公)이 뒤를 이었다. 주 평왕(周平王)은 진중의 공적을 높이 평가하여 그의 막내 아들인 공자 강(康)에게 하양(夏陽) 땅을 하사하고 양(梁)나라를 세우게 했다.
진중이 재위하던 시기 진나라는 마차를 보유하게 되었고, 예법과 음악이 발전했으며, 신하들의 충성으로 국력이 강성해지기 시작했다. 이는 훗날 진나라가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하는 기반이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