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대
1. 개요
최승대는 모란봉 일대에 위치한 역사적인 건축물 중 하나이다. 을밀대는 언덕 높은 곳에 위치하여 외적의 침입을 감시하는 지휘소 역할을 했으며, 임진왜란 당시 고니시 유키나가가 지휘소로 사용하기도 했다. 주변에는 아름다운 자연 경관이 펼쳐져 있으며, 선녀들이 내려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이름 | 최승대 (最勝臺) |
|---|---|
| 유형 | 국보 |
| 지정 번호 | 21 |
| 시대 | 고구려 |
| 위치 | 평양시 중구역 모란동 |
-
글로벌세계대백과를 인용한 문서/{{{분류3 -
공 (악기)
공은 금속으로 제작된 타악기로, 다양한 문화권에서 의식, 신호, 음악 연주 등에 사용되며, 형태와 용도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뉜다. -
글로벌세계대백과를 인용한 문서/{{{분류3 -
국무회의
국무회의는 대한민국 대통령을 의장으로, 예산, 법률안, 외교, 군사 등 국정 현안을 심의하는 중요한 기관이며,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으로 구성되고, 정례회의는 매주 1회, 임시회의는 필요에 따라 소집된다. -
글로벌세계대백과를 인용한 문서/{{{분류2 -
공 (악기)
공은 금속으로 제작된 타악기로, 다양한 문화권에서 의식, 신호, 음악 연주 등에 사용되며, 형태와 용도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뉜다. -
글로벌세계대백과를 인용한 문서/{{{분류2 -
국무회의
국무회의는 대한민국 대통령을 의장으로, 예산, 법률안, 외교, 군사 등 국정 현안을 심의하는 중요한 기관이며,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으로 구성되고, 정례회의는 매주 1회, 임시회의는 필요에 따라 소집된다. -
조선의 건축물 -
숭례문
숭례문은 1398년에 완공된 조선 시대 서울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며, 국보 제1호로 지정되었으나 방화 사건으로 훼손되어 복구되었고, 다양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
조선의 건축물 -
광한루
광한루는 조선 시대 남원에 세워진 누각으로, 광통루에서 유래하여 광한청허부의 의미를 담아 개칭되었고, 정유재란 후 재건되었으며, 춘향전의 배경으로 광한루원으로 확장되어 관리되고 있다.
2. 역사
--
임진왜란 시기 을밀대는 군사적 요충지였으며, 고니시 유키나가는 을밀대의 어밀정을 지휘소로 사용했다. 평양성 탈환을 위해 조선군과 명나라 연합군은 을밀대의 일본군과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2.1. 임진왜란 시기
임진왜란 당시 을밀대는 군사적 요충지로 사용되었다. 언덕 위에 있어 외국 침략자를 감시하기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2,000명의 호위병과 함께 을밀대의 어밀정을 지휘소로 사용했다. 평양성을 탈환하러 온 조선군과 명나라 연합군은 을밀대를 점령하고 있던 일본군과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3. 지리적 특징
--
최승대는 모란봉 일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을밀대를 포함하고 있다. 주변에는 청류정, 부벽루, 칠성문, 종금문, 현무문, 동암문 등 역사적인 건축물들이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다.
3.1. 을밀대 구조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을밀대는 "모임지붕에 겹처마를 한 단층 건물로, 성가퀴와 천장 전체를 갖추고 있다." 정면 길이는 7.36m, 측면 길이는 4.67m이다. 을밀대는 청류정, 부벽루, 칠성문, 종금문, 현무문, 동암문 등 언덕 위에 있는 많은 역사적인 건축물 중 하나이다.
3.2. 주변 환경
--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최승대는 "모임지붕에 겹처마를 한 단층 건물로, 성가퀴와 천장 전체를 갖추고 있다." 정면 길이는 7.36m, 측면은 4.67m이다. 울밀대, 청류정, 부벽루, 칠성문, 종금문, 현무문, 동암문 등 언덕 위에 있는 많은 역사적인 건축물 중 하나이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최승대를 중심으로 주변에 아름다운 꽃과 나무가 많았으며, 하늘에서 선녀들이 내려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4. 전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아름다운 꽃과 나무가 많은 을밀대를 중심으로 하늘에서 선녀들이 내려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