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 (188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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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최윤(崔潤, 1886년 3월 29일 ~ 1970년 2월 16일)은 일제강점기의 관료이자 기업인으로, 본적은 경상북도 경주군 경주읍입니다. 경주 최부잣집 종손 최준의 친동생입니다.
다음은 최윤에 대한 자세한 정보입니다:
- 생애:
- 1886년 한국에서 출생, 아버지 최현식은 32세, 어머니 류씨는 35세였습니다.
- 1905년경 류씨와 결혼하여 최소 2남 1녀를 두었습니다.
- 경전 및 서예, 바둑에 능통했고, 국악인 박동진을 사사했습니다.
- 형 최준이 거절한 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받아들여 가문을 유지했습니다.
- 해방 후 반민특위에 체포되었으나, 학병 권유 등 사소한 친일 행위도 없다는 사실이 밝혀져 석방되었습니다.
- 경주역사와 금융조합 등을 건설한 공적을 인정받았습니다.
- 경주문화협회 설립, 경주예술대학 개교 공헌, 경주고전무용연구소 개원 등 경주 문화예술 창달에 전력했습니다.
- 남은 재산은 대구대 설립 때 기부했습니다.
- 1970년 83세의 나이로 고향에서 사망했습니다.
- 일본식 이름: 山佳潤 (야마요시 준)
- 호: 문파(汶坡)
- 경력: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
- 1941년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으로 참여했습니다.
- 조선총독부가 주최한 중견유림성지순배단에 참여하여 내선일체와 일제의 황민화 정책을 지지했습니다.
- 1949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특별검찰부에 송치되었습니다.
-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 중추원 부문에 포함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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