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리시오 아라볼라사
1. 개요
파트리시오 아라볼라사는 스페인의 축구 선수로, 레알 유니온에서 활약하며 여러 차례 코파 델 레이 우승을 경험했다. 1920년 하계 올림픽에서 스페인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은메달을 획득했으며, 덴마크와의 경기에서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의 첫 골을 기록했다. 또한, 바스크 대표팀 소속으로 아스투리아스 공작컵에서 우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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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Patricio Arabolaza Aranburu |
|---|---|
| 출생일 | 1893년 3월 17일 |
| 출생지 | 스페인 이룬 |
| 사망일 | 1935년 3월 10일 |
| 사망지 | 스페인 이룬 |
| 포지션 | 공격수 |
| 1909-1914 | Racing de Irún |
|---|---|
| 1915-1923 | 레알 우니온 |
| 1914-1915 | Gipuzkoa |
|---|---|
| 1915-1922 | Basque Country |
| 1920-1921 | 스페인 |
| 국가대표팀 출장 (골) | 5 (1) |
| 메달 | 남자 축구 |
|---|---|
| 팀 | 바스크 국가대표팀 |
| 대회 | Prince of Asturias Cup |
| 금메달 | 1915 Prince of Asturias Cup |
| 국가 | 스페인 |
| 대회 | 올림픽 |
| 은메달 | 1920 안트베르펜 팀 경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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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남자 축구 선수 -
마누엘 사가르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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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남자 축구 선수 -
마누엘 프라스트
마누엘 프라스트는 스페인 축구 선수로서 레알 마드리드 CF의 초창기 주요 선수였으며, 은퇴 후에는 중앙 지역 연맹의 심판 위원회 초대 회장을 맡아 스페인 축구 심판 제도의 기틀을 다지는 데 기여했다. -
스페인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
마누엘 사가르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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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
미겔 앙헬 나달
미겔 앙헬 나달은 스페인 출신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 센터백과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FC 바르셀로나에서 전성기를 보내 라리가 우승 등을 경험했으며, 스페인 국가대표팀으로 62경기에 출전했다. -
기푸스코아도 출신 -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는 혁신적인 디자인과 완벽한 재단 기술로 "쿠튀르계의 건축가"라는 찬사를 받은 스페인 패션 디자이너로, 스페인 왕족을 위한 의상을 만들다 파리로 이주하여 독창적인 구조적 디자인으로 패션계를 장악하고 후대 디자이너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유산을 기리는 박물관이 고향에 설립되고 그의 삶을 다룬 TV 시리즈가 제작되기도 했다. -
기푸스코아도 출신 -
미겔 로페스 데 레가스피
미겔 로페스 데 레가스피는 스페인의 탐험가이자 초대 필리핀 총독으로, 1565년 필리핀 탐험대를 이끌어 세부와 마닐라를 정복하고 스페인 식민 통치를 시작했으며, 가톨릭 개종과 마닐라를 수도로 선포, 마닐라 갤리온 무역 창출에 기여했다.
2. 클럽 경력
이룬 출신인 파트리시오는 1909년 고향 클럽인 라싱 데 이루운에서 축구를 시작했으며, 1913년 코파 델 레이 우승에 기여했다. 1915년 클럽 합병으로 창단된 레알 유니온에 합류하여 선수 경력의 대부분을 보냈고, 이 시기 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여러 차례 지역 선수권 대회 우승과 코파 델 레이 결승 진출을 경험했다.
2.1. 레알 유니온
이룬 출신인 파트리시오는 1909년 고향 클럽인 라싱 데 이루운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그는 1913년 코파 델 레이 결승전에서 아틀레틱 빌바오를 상대로 골을 넣어 2-2 무승부를 기록했고, 다음날 열린 재경기에서 팀이 1-0으로 승리하며 우승하는 데 기여했다.
1915년, 라싱 데 이루운이 스포르팅 데 이루운과 합병하여 레알 우니온 클루브 데 이루운이 창단되자, 파트리시오는 다른 라싱 선수들과 함께 새 클럽에 합류했다. 레알 우니온은 이후 10년 동안 바스크와 스페인 축구계의 강팀으로 군림했으며, 파트리시오는 이 시기 전반부 팀의 핵심 선수였다. 그는 레알 우니온 소속으로 네 차례의 지역 선수권 대회 우승을 경험했으며, 1918년과 1922년 코파 델 레이 결승전에 진출했다.
1918년 결승전에서는 마드리드 FC를 2-0으로 꺾고 우승컵을 들어 올렸으나, 1922년 결승전에서는 바르셀로나에 1-5로 패배했다. 이 경기에서 파트리시오는 팀의 유일한 골을 기록했지만, 바르셀로나 선수 수로카와 큰 충돌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파트리시오는 1년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고, 레알 우니온 구단 역시 당시로서는 큰 금액인 500페세타의 벌금을 내야 했다. 1년의 출장 정지는 사실상 그의 선수 경력 마무리를 의미했다. 당시 그는 30세에 가까웠고, 17세부터 선수 생활을 해왔다. 파트리시오는 1923년 산 세바스티안의 아토차 경기장에서 열린 친선 경기를 끝으로 공식 은퇴했다.
주요 성적
| 대회 | 우승 | 준우승 |
|---|---|---|
| 북부 지역 선수권 대회 | 1917–18 | |
| 기푸스코아 선수권 대회 | 1919–20, 1920–21, 1921–22 | |
| 코파 델 레이 | 1913 (라싱 데 이루운), 1918 | 1922 |
3. 국가대표팀 경력
그는 스페인 국가대표팀의 원년 선수단 일원으로, 1920년 하계 올림픽에 참가하여 은메달을 획득했다. 또한 그는 스페인 국가대표팀 역사상 첫 번째 골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는 지역 대표팀인 기푸스코아 대표팀 소속으로도 활동했으며, 아스투리아스 공작컵 우승 경력이 있다.
3.1. 1920년 하계 올림픽
그는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의 원년 선수단 일원으로 1920년 하계 올림픽에 참가했다. 그는 이 대회에서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1920년 8월 28일에 열린 덴마크와의 본선 첫 경기에서 1-0 결승골을 넣어 스페인 국가대표팀 역사상 첫 번째 골을 기록하는 영예를 안았다. 아라볼라사는 대회 5경기 중 4경기에 출전하며 스페인이 은메달을 획득하는 데 기여했다.
3.2. 바스크 대표팀
레알 우니온 선수였던 그는 기푸스코아 대표팀에서 뛸 자격이 있었다. 1914년 12월 13일, 비스카야 대표팀과의 팀 역사상 첫 국제 경기에 출전하여 산 마메스에서 경기를 치렀다. 비록 2-1로 패했지만, 파트리시오는 만회골을 기록하며 팀 역사상 첫 골의 주인공이 되었다. 1915년 5월, 그는 RFEF가 주최한 지역 간 대회인 초대 아스투리아스 공작컵 우승팀의 일원이 되었다. 카스티야/마드리드 연합팀과의 결승전에서 그는 1-1 무승부로 이어진 선제골을 넣었고, 이로써 바스크 대표팀은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컵을 들어올렸다.
;바스크
*아스투리아스 공작컵:
**우승 (1) 1915
4. 사생활
그는 이룬 출신이다.
5. 수상 내역
*레알 우니온
북부 지역 선수권 대회:
*우승 (1) 1917–18
기푸스코아 선수권 대회:
*우승 (3) 1919–20, 1920–21, 1921–22
코파 델 레이:
*우승 (2) 1913 (라싱 데 이루운 소속), 1918
*준우승 (1): 1922
* 스페인
하계 올림픽:
* 은메달 (1): 1920
* 바스크
아스투리아스 공작컵:
*** 우승 (1): 1915
5.1. 클럽
이룬 출신인 파트리시오는 1909년 고향 클럽인 라싱 데 이루운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1913년 코파 델 레이 결승전에서 아틀레틱 빌바오를 상대로 2-2 무승부를 기록하며 골을 넣었고, 다음날 열린 재경기에서 1-0으로 승리하며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1915년, 라싱 데 이루운은 스포르팅 데 이루운과 합병하여 레알 우니온 클럽 데 이루운을 창단했다. 파트리시오는 다른 라싱 선수들과 함께 새롭게 창단된 이 클럽에 합류했다. 레알 우니온은 이후 10년 동안 바스크와 스페인 축구계에서 지배적인 팀 중 하나가 되었으며, 파트리시오는 그 10년의 전반기 동안 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했다. 레알 우니온 소속으로 네 차례의 지역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으며, 1918년과 1922년 코파 델 레이 결승전에 진출했다. 1918년 결승전에서는 마드리드 FC를 2-0으로 꺾고 우승했지만, 1922년 결승전에서는 바르셀로나에 1-5로 패했다. 이 경기에서 파트리시오는 레알 우니온의 유일한 골을 넣었으나, 바르셀로나 선수 수로카와 큰 충돌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파트리시오는 1년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고, 레알 우니온은 당시로서는 큰 금액인 500페세타의 벌금을 물었다. 1년 출장 정지는 사실상 파트리시오의 은퇴로 이어졌는데, 그는 당시 30세에 가까웠고 17세부터 선수 생활을 해왔다. 그는 1923년 산 세바스티안의 아토차 경기장에서 열린 친선 경기에서 은퇴했다.
수상 내역
*레알 우니온
북부 지역 선수권 대회:
*우승 (1) 1917–18
기푸스코아 선수권 대회:
*우승 (3) 1919–20, 1920–21, 1921–22
코파 델 레이:
*우승 (2) 1913 (라싱 데 이루운 소속), 1918
***준우승 (1): 1922
5.2. 국가대표팀
파트리시오 아라볼라사는 레알 우니온 선수로서 기푸스코아 대표팀에서 뛸 자격이 있었다. 그는 1914년 12월 13일 비스카이와의 팀 역사상 첫 경기에 출전하여 산 마메스에서 경기를 치렀다. 이 경기에서 팀은 1-2로 패했지만, 아라볼라사는 팀의 유일한 골을 넣어 기푸스코아 대표팀 역사상 첫 득점자가 되었다.
1915년 5월, 그는 바스크 대표팀의 일원으로 RFEF가 주최한 지역 간 대회인 아스투리아스 공작컵의 초대 대회 우승을 경험했다. 카스티야/마드리드 XI와의 결승전에서 그는 선제골을 기록했고, 경기는 1-1 무승부로 끝났으며, 이로써 바스크 팀은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컵을 들어올렸다.
아라볼라사는 스페인 국가대표팀의 원년 선수단 일원이기도 했다. 그는 1920년 하계 올림픽에서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1920년 8월 28일, 덴마크와의 대회 본선 경기에서 그는 결승골을 넣어 1-0 승리를 이끌었는데, 이는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역사상 첫 번째 골이었다. 그는 이 대회에서 스페인 대표팀 소속으로 총 5경기 중 4경기에 출전하여 은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 스페인
하계 올림픽:
* 은메달 (1): 1920
* 바스크
아스투리아스 공작컵:
* 우승 (1): 1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