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다 후쿠사부로
1. 개요
하라다 후쿠사부로는 일본의 축구 선수로, 오사카 SC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1923년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1923년 극동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여 필리핀과 중화민국을 상대로 경기를 뛰었다. 그는 1923년에 A매치 2경기에 출전했다.
| 이름 | 후쿠사부로 하라다 |
|---|---|
| 원어 이름 | 原田 福三郎 |
| 로마자 표기 | Harada Fukusaburo |
| 출생 국가 | 일본 제국 |
| 포지션 | 골키퍼 |
| 유소년 클럽 | 메이세이 상업 고등학교 |
|---|---|
| 클럽 | 오사카 SC |
| 국가대표팀 | 일본 |
|---|---|
| 국가대표 데뷔 년도 | 1923년 |
| 국가대표 출장 횟수 | 2회 |
| 국가대표 득점 횟수 | 0회 |
-
일본의 남자 축구 선수 -
교토쿠 고지
교토쿠 고지는 일본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다양한 클럽과 국가대표팀을 지휘하며, 2008년 부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남아시아 축구 연맹컵 준결승 진출, 2003년 시미즈 에스펄스 감독으로 J리그컵 준결승과 천황배 준결승 진출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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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마타 데쓰오
스가마타 데쓰오는 일본의 전 축구 선수로, 수비수로 활약하며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23경기에 출전했고, 히타치 제작소 축구부에서 선수 생활을 하며 1980년과 1982년 일본 사커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는 등 다양한 국제 대회에 출전했다. -
죽은 해 누락 -
미야지 도시오
미야지 도시오는 오사카 SC에서 선수 생활을 한 일본의 축구 선수로, 1925년 극동 선수권 대회에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참가하여 2경기에 출전했다. -
죽은 해 누락 -
다카하시 시게루
다카하시 시게루는 1927년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극동 선수권 대회에 참가, 중화민국과의 데뷔전을 치르고 필리핀과의 경기에서 일본 대표팀의 A매치 첫 승리를 경험한 축구 선수이다. -
태어난 해 누락 -
손니 알리
손니 알리는 송가이 제국의 군주로서 니제르 강 유역을 장악한 후 팀북투와 젠네를 정복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제국을 확장했으며, 전통 신앙과 이슬람교 조화, 법에 의한 국가 통제, 무역 확립 등 내치에도 힘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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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스트롱
윌리엄 스트롱은 17세기 영국의 목사이자 작가로,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의회 앞에서 설교하고 웨스트민스터 총회 등에서 목회 활동을 하다가 사망 후 유해가 버려졌다.
2. 클럽 경력
하라다는 그의 모교 졸업생들이 설립한 오사카 SC에서 뛰었으며, 당시 일본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하던 간다 기요오, 아즈미 시로, 히다카 우사부로, 히라바야시 도시오, 사와가타 세쓰, 키사카 키쿠조, 후지와라 요시오, 이노우에 슌페이 등이 오사카 SC에 함께 소속되어 있었다.
하라다는 오사카 축구 클럽 소속으로, 1923년 5월 오사카에서 개최된 제6회 극동 선수권 대회에 축구 일본 대표로 선출되어 필리핀과의 경기에 출장했다. 이 경기는 일본 대표팀의 첫 국제 A매치였으나, 1-2로 역전패했다. 다음 날 중화민국과의 경기에도 출장했지만, 1-5로 패했다. 1925년 제7회 극동 선수권 대회에도 대표로 선출되었으나, 와타나베 야노스케의 후보 골키퍼가 되어 경기에 출장하지는 못했다.
3. 국가대표 경력
하라다는 1923년 5월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오사카에서 열린 극동 선수권 대회에 참가했다. 5월 23일 필리핀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경기에서 데뷔했는데, 이 경기는 일본 대표팀의 첫 A매치였다. 다음 날인 5월 24일 중화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경기에도 출전했지만, 일본은 두 경기 모두 패했다(필리핀전 1-2, 중화민국전 1-5). 하라다는 1923년에 일본 대표팀에서 2경기를 뛰었다. 1925년 극동 선수권 대회에는 와타나베 야노스케에 밀려 예비 골키퍼로 출전하지 못했다.
3.2. 출장 대회
1923년 5월, 하라다는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오사카에서 열린 극동 선수권 대회에 참가했다. 5월 23일, 필리핀 축구 국가대표팀을 상대로 데뷔했는데, 이 경기는 일본 대표팀의 첫 A매치였다. 다음 날, 중화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상대로도 경기를 뛰었으나, 일본은 두 경기 모두 패했다(필리핀전 1-2, 중화민국전 1-5). 하라다는 1923년에 일본 대표팀에서 2경기를 뛰었다. 1925년 극동 선수권 대회에도 일본 대표팀에 선발되었지만, 와타나베 야노스케에 밀려 예비 골키퍼였기 때문에 출전하지 못했다.
| 대회 | 결과 |
|---|---|
| 제6회 극동 선수권 대회 | 3위 |
3.3. 상세 기록
하라다는 1923년 오사카에서 열린 극동 선수권 대회에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로 참가했다. 1923년 5월 23일, 필리핀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경기에 출전하여 일본 대표팀의 첫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다음 날인 5월 24일에는 중화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경기에도 출전했다. 그러나 일본은 두 경기 모두 패했다(필리핀전 1-2, 중화민국전 1-5). 하라다는 1923년에 일본 대표팀 소속으로 2경기에 출전했다. 1925년 극동 선수권 대회에도 대표팀에 선발되었지만, 와타나베 야노스케에 밀려 예비 골키퍼로 경기에 출전하지는 못했다.
|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 ||
|---|---|---|
| 연도 | 출장 | 골 |
| 1923 | 2 | 0 |
| | 2 ||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