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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흥 학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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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흥 학살 사건은 1950년 인천 상륙 작전 이후 후퇴하던 북한군이 함경남도 함흥시에서 자행한 학살 사건입니다.
주요 내용:


  • 시기: 1950년 인천 상륙 작전 직후, 북한군 후퇴 시기
  • 가해자: 북한군 및 그들을 지원하던 좌익 세력
  • 피해자: 함흥시 민간인 약 12,000명 (납치 및 실종자 제외)
  • 학살 방식: 총살, 우물에 생매장, 투석 (방공호의 경우 폭사)
  • 장소: 함흥감옥 (약 700명), 함흥시 충령탑 지하실 (약 200명), 함흥시 정치보위부 지하실 3곳 (약 300명), 함흥 북쪽 덕산 니켈광산 (약 6,000명), 함흥시 반룡산 방공호 (약 8,000명)
  • 배경: 김일성은 전쟁 초기 '불순분자 색출'을 명목으로 예비검속을 실시했고, 미군이 압박해오자 이들을 학살했습니다. 김일성은 "후방을 철옹성같이 다져야 한다"며 도피자, 유언비어 유포자, 밀정, 파괴분자 등을 가차없이 숙청하고 반역자를 처단하라고 지시했습니다.

학살의 증거 및 자료:

  •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NARA) 자료
  • 대한민국통계연감 (1952년 발간)
  • "남북한 관계 사료집 22권"에 수록된 김일성의 발언 (1950년 6월 26일 방송)
  • 생존자들의 증언
  • 발견된 시신들

기타 정보:

  • 함흥시는 조선 왕조를 건국한 이성계가 왕자의 난 이후 은퇴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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