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성 만세운동
1. 개요
횡성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27일부터 4월 12일까지 횡성 지역에서 일어난 3.1 운동이다. 횡성천도교회 이채일과 이동구에 의해 독립선언서가 전달되고 최종하, 신재근, 장동훈이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배부했다. 3월 27일 횡성 읍내 장터에서 수백 명의 군민이 만세 운동을 벌여 8명이 체포되었으며, 4월 1일에는 1,300여 명이 운집하여 시위를 벌였다. 4월 12일까지 각 면에서 만세 운동이 격렬하게 전개되는 과정에서 하영현, 강달희, 전한국, 강성순 의사가 현장에서 순국하고, 강만형 의사가 옥중에서 순국했다.
| 명칭 | 횡성 만세 운동 |
|---|---|
| 별칭 | 횡성 4·1 만세 운동 |
| 발생 위치 | 강원도 횡성군 |
| 시기 | 1919년 4월 1일 |
| 주최 | 횡성 군민 |
| 관련 사건 | 3·1 운동 |
| 시대적 배경 | 일제강점기 3·1 운동의 영향 |
|---|
| 시작 | 1919년 4월 1일, 횡성 장날을 이용 |
|---|---|
| 참여 인원 | 수천 명의 군민 |
| 주요 활동 | 독립 만세 시위 가두 행진 |
| 구호 | 독립 만세 |
| 일본 제국의 진압 | 무력 진압 및 다수의 체포, 부상자 발생 |
|---|---|
| 영향 | 횡성 지역의 독립 의지를 고취 |
| 기념 행사 | 매년 4월 1일, 횡성군민 만세 운동 기념 행사 개최 |
|---|---|
| 기념 시설 | 횡성 4·1 만세 운동 공원 (호국 성지화 사업 추진 중) |
| 주요 참여자 | 횡성 군민 |
|---|---|
| 주도 인물 | (구체적인 인물 정보는 문서에 제시되지 않음) |
| 추가 정보 | 횡성 4·1 만세 운동은 3·1 운동의 영향을 받아 횡성 지역에서 발생한 독립 만세 시위이다. 횡성 장날을 이용하여 수천 명의 군민이 참여하였으며, 독립 만세를 외치며 가두 행진을 벌였다. 일본 제국의 무력 진압으로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지만, 횡성 지역의 독립 의지를 고취하는 데 기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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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의 역사 -
백담사
백담사는 647년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로, 이름 변경과 소실 및 재건을 거쳐 1783년 현재 이름으로 개칭되었으며, 내설악의 대표 사찰이자 만해 한용운의 저술 활동 장소,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은둔 생활 장소로 알려져 있고,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기본선원이자 목조아미타불좌상 등 다수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
강원도의 역사 -
강원도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강원도는 일제의 식민 통치하에 자원 수탈과 강제 노역, 징병에 시달렸으며, 전시 동원 체제 강화와 민족 문화 말살 정책으로 고통받고 해방 후 분단으로 아픔을 겪었다. -
1919년 3월 -
3·1 운동
3·1 운동은 1919년 일본의 무단 통치에 저항하여 시작된 한국의 독립운동으로, 민족대표 33인의 독립선언서 낭독을 시작으로 전국으로 확산되었으며, 일본의 무력 진압으로 많은 사상자를 냈지만 대한민국 임시 정부 수립의 계기가 되었다. -
1919년 3월 -
3·1독립선언서
1919년 손병희 등 민족대표 33인이 한국의 독립을 선언한 3·1독립선언서는 최남선이 초안을 작성하고 2·8 독립 선언의 영향을 받아 조선의 독립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며 3·1 운동의 기폭제가 되어 대한민국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1919년 4월 -
남해 3·1독립운동
남해 3·1 독립운동은 1919년 4월 경상남도 남해군에서 일어난 항일 독립만세운동으로, 군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저항을 보여주었으나 일본 경찰의 무력 진압으로 희생자를 낳았고, 남해군민의 독립 의지를 고취하고 항일 운동의 토대가 되어 참여자들에게 건국훈장이 추서되었다. -
1919년 4월 -
바이에른 평의회 공화국
바이에른 평의회 공화국은 제1차 세계 대전 패배 후 바이에른에서 수립된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공산주의자들이 권력을 잡았지만, 바이마르 공화국 군대에 의해 1919년 붕괴되었다.
2. 횡성 지역 3.1 운동의 전개
횡성천도교회의 이채일과 이동구가 독립선언서를 전달했고, 최종하, 신재근, 장동훈이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배부하였다. 이후 횡성 지역 만세운동 과정에서 하영현, 강달희, 전한국, 강성순 의사는 현장에서 순국하였고, 강만형 의사는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2.1. 1919년 3월 27일 횡성읍내 만세운동
1919년 3월 27일, 수백 명의 횡성 군민이 횡성읍 장터에 모여 태극기를 앞세우고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고, 8명이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2.2. 1919년 4월 1일 ~ 12일 횡성군 각 면 만세운동
1919년 3월 27일, 수백 명의 횡성 군민이 읍내 장터에 모여 태극기를 앞세우고 만세 운동을 전개하여 8명이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4월 1일에는 1,300여 명의 군민이 운집하여 태극기 물결을 이루었고, 이어 2일까지 200여 명이 일본 제국 헌병분견소에 모여 대한민국의 독립과 체포자 석방을 요구하며 격렬한 시위를 전개하였다. 4월 12일까지 횡성군 각 면에서 거센 만세운동이 펼쳐졌으며, 이 과정에서 하영현, 강달희, 전한국, 강성순 의사는 현장에서 순국하였고, 강만형 의사는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3. 횡성 지역 3.1 운동 참여자들의 희생
1919년 3월 27일, 수백 명의 횡성 군민이 읍내 장터에 모여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 운동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8명이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4월 1일에는 1,300여 명의 군민이 모여 다시 태극기를 흔들었고, 2일까지 200여 명이 일본 헌병분견소에 모여 대한민국의 독립과 체포된 사람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4월 12일까지 각 면에서 만세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는데, 이 과정에서 하영현, 강달희, 전한국, 강성순 의사는 현장에서 순국하였고, 강만형 의사는 옥중에서 순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