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아힌
1. 개요
후아힌은 태국 펫차부리 주에 위치한 해변 휴양 도시이다. 1834년 가뭄으로 인해 농부들이 정착하면서 '사모레 리앙'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1921년 철도역 호텔 건설과 프라자드히폭 왕의 여름 별궁인 왕끌라이깡원 궁전 건설을 통해 왕실 휴양지로 개발되었으며, 현재 태국 왕가의 영구 거주지이다. 후아힌은 "순금의 도시, 맛있는 코코넛과 파인애플, 즐거운 해변과 산, 동굴 그리고 영적인 아름다움의 땅"이라는 슬로건으로 대표된다.
2. 역사
1834년 펫짜부리 주에 심한 가뭄이 발생하여 농작지에 피해를 입자, 농부들이 남쪽으로 이동하여 하얀 모래 해변이 있는 작은 마을에 정착하였다. 이들은 이 마을을 '바위 무리'라는 의미를 가진 '사모레 리앙'이라고 불렀다.
1921년 철도청장이었던 푸라차트라 왕자가 이곳 근처에 철도역 호텔을 지으면서 후아힌은 휴양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프라자드히폭 왕(라마 7세)은 후아힌을 좋아하여 여름별장을 지었고, 이 별궁은 왕끌라이깡원(무근심)이라고 불렸다. 왕끌라이깡원 궁전은 현재 태국 왕가의 영구 거주지가 되었다. 끄롬쁘라 나레스워라릿 왕자는 벤라엠힌에 쑤카베 궁전을 짓고, 그 옆의 해변을 후아힌이라고 명명했다.
2.1. 초기 정착
1834년 펫짜부리 주에 심한 가뭄이 발생하여, 농작지에 피해를 입었다. 이에 한 무리의 농부들이 남쪽으로 이동하여 하얀 모래 해변이 있는 작은 마을에 정착하였다. 이들은 이 마을을 '바위 무리'라는 의미를 가진 '사모레 리앙'이라고 불렀다.
2.2. 왕실 휴양지 개발
1921년 철도청장이었던 푸라차트라 왕자가 이곳 근처에 철도역 호텔을 지으면서 후아힌은 휴양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프라자드히폭 왕(라마 7세)은 후아힌을 좋아하여 여름별장을 지었고, 이 별궁은 왕끌라이깡원(무근심)이라고 불렸다. 왕끌라이깡원 궁전은 현재 태국 왕가의 영구 거주지가 되었다. 끄롬쁘라 나레스워라릿 왕자는 벤라엠힌에 쑤카베 궁전을 짓고, 그 옆의 해변을 후아힌이라고 명명했다.
3. 슬로건
순금의 도시, 맛있는 코코넛과 파인애플, 즐거운 해변과 산, 동굴 그리고 영적인 아름다움의 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