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도 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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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13도 의군(十三道 義軍)은 대한제국 말기와 일제 강점기에 활동했던 항일 의병 조직입니다. 13도 의군은 두 개의 주요 조직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13도 창의군 (十三道 倡義軍):
- 시기: 1907년
- 개요: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전국적으로 의병 항쟁이 다시 일어났을 때, 각지의 의병 부대들을 통합하여 일본군을 몰아내고 독립을 이루기 위해 결성된 자발적인 의병 연합 부대입니다.
- 조직: 총대장 이인영, 중군대장 이은찬, 총독장 이구채 등이 주요 지휘부를 맡았습니다. 전국 각 도를 대표하는 의병장들과 약 1만여 명의 의병, 해산 군인들이 참여했습니다.
- 활동:
- 한성 탈환 작전을 벌였으나, 일본군의 강력한 저항으로 동대문 밖 30리 지점에서 철수했습니다.
- 이후 경기도와 황해도 지방에서 활발한 전투를 전개했습니다.
- 각국 공사관에 교전 단체로 승인해 줄 것을 요구하는 등 항일 의병 운동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 이 작전은 독립운동 사상 가장 큰 규모의 의병운동으로 평가
- 한계: 일제의 밀정 활동으로 인해 평민 출신 의병장들이 이끄는 부대들이 연합 조직에서 배제되기도 했습니다.
2. 13도 의군 (十三道 義軍):
- 시기: 1910년
- 개요: 대한제국 말기 국내외 의병 활동을 통합 지휘하기 위해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조직되었습니다. 유인석, 이상설, 이남기, 이범윤 등이 주축이 되었습니다.
- 조직: 도총재 유인석, 창의총재 이범윤, 장의총재 이남기, 도총소참모 우병렬, 도총소의원 홍범도, 이진룡 등이 주요 인물입니다. 신민회의 안창호, 이갑 등도 참여하여 의병 운동과 애국 계몽 운동의 협력을 보여주었습니다.
- 지방조직: 의군은 국내의 각 도마다 총재, 총령, 참모, 총무, 소모(召募), 규찰(糾察), 통신 등의 임원을 두었다.
- 활동:
- 1910년 대한제국 국권 피탈 이후에도 무장 투쟁을 계속했습니다.
- 이상설 등과 함께 두만강 연안으로 진격하려 했으나, 러시아 당국에 의해 유인석이 체포되면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 해체: 1915년 유인석이 사망하면서 구심점을 잃고 해체되었습니다.
두 조직 모두 '13도 의군'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만, 시기와 구성, 활동 지역 등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13도 창의군은 국내에서, 13도 의군은 국외(연해주)에서 결성되어 항일 무장 투쟁을 전개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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