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고조기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본문

고조기(高兆基, ? ~ 1157년)는 고려 시대의 문신입니다. 본관은 제주이며, 초명은 고당유(高唐愈), 호는 계림(鷄林)입니다.

고조기는 고려 예종 2년(1107년)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남주(南州)의 수령으로 나가 청렴하게 봉직하였고, 인종 때는 시어사(侍御史)로서 봉우(奉佑)를 논박하다가 공부원외랑(工部員外郞)으로 좌천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다시 대관(臺官)이 되어 이자겸 일당을 배척할 것을 상소하였으나, 예부낭중(禮部郞中)으로 물러났습니다.

고조기는 의종 때 중용되어, 의종 1년(1147년) 수사공상주국(守司空上柱國)을 거쳐, 의종 2년(1148년) 정당문학판호부사(政堂文學判戶部事)가 되었고, 지공거(知貢擧)로서 류정견(柳廷堅) 등 25인의 급제자를 선발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권판병부사(權判兵部事)·참지정사판병부사(參知政事判兵部事)를 거쳐 의종 3년(1149년)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郎平章事)로 승진하였습니다.

하지만, 고조기는 김존중(金存中)에게 영합하다가 탄핵을 받아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로 좌천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김존중의 도움으로 다시 평장사로 복귀했고, 판병부사(判兵部事), 중군병마판사 겸 서북면병마판사(中軍兵馬判事兼西北面兵馬判事)를 역임하였습니다. 의종 11년(1157년)에 사망했으며, 시호는 문경(文敬)입니다.

고조기는 성품이 강개하고 경서와 사서에 능통했으며, 오언시(五言詩)에 뛰어났다고 전해집니다. 그의 묘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1동에 있으며, 묘비에는 “고려중서시랑평장사상주국 문경공 고조기 묘비(高麗中書侍郞平章事上柱國 文敬公 高兆基 墓碑)”라고 적혀 있습니다.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