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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데리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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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군데리쿠스는 406년 라인강을 건너 이베리아 반도로 이동한 반달족의 왕이었다. 그는 고디기셀의 아들로, 마인츠 전투에서 고디기셀이 사망한 후 왕위를 계승했다. 군데리쿠스는 하스딩기 반달족과 함께 갈라이시아에 왕국을 세웠으며, 알라니족의 왕 아타케스가 사망한 후 알라니족을 받아들여 반달족과 알라니족의 왕이 되었다. 그는 로마, 수에비족, 서고트족과의 갈등을 겪었으며, 428년 세비야를 점령했지만 같은 해 사망했다. 군데리쿠스 사후, 그의 이복형제 가이세리크가 반달족의 왕위를 이어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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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데리쿠스
기본 정보
정치 경력
직책반달족 족장
임기406년 - 428년
전임자고디기젤
후임자가이세리크

2. 초기 생애와 라인강 도하 (406년)

군데리쿠스는 하스딩기(Hasdingi) 반달족의 왕 고디기셀(Godigisel)의 아들이었다. 406년 마지막 날, 반달족이 라인강(Rhine river)을 건너 로마 제국의 국경을 넘는 라인강 도하를 감행했을 때, 군데리쿠스는 아버지와 함께 있었다.[1]

2. 1. 하스딩기 반달족의 왕위 계승

406년, 라인강 도하 당시 하스딩기 반달족의 왕 고디기셀이 전투에서 사망하자 군데리쿠스가 왕위를 계승했다.[1] 프랑크족과의 전투에서 아버지 고디기셀이 사망했기 때문이다.[1]

409년 10월, 군데리쿠스와 그의 백성은 피레네 산맥을 넘어 이베리아 반도로 들어갔다.[1] 그는 하스딩기 반달족과 함께 로마 속주 갈라이시아 (이베리아 북서부)에 왕국을 세웠다.[1] 418년, 알라니족의 왕 아타케스가 서고트족과의 전투에서 사망하자, 살아남은 알라니족은 군데리쿠스에게 의탁했고, 군데리쿠스는 이를 수락하여 반달족과 알라니족의 왕이 되었다.[1]

428년 군데리쿠스는 히스팔리스에서 교회를 점령하려다 갑작스럽게 사망했다.[1] 이후 반달족은 그의 이복형제 가이세리크를 후계자로 선출했다.[1]

3. 이베리아 반도 정착과 갈등 (409년 ~ 428년)

군데리쿠스는 406년 라인강 도하 이후 409년 피레네 산맥을 넘어 이베리아 반도에 정착했다. 하스딩기 반달족과 함께 갈라이시아에 왕국을 세웠으나, 418년 서고트족에게 쫓겨났다. 같은 해 알라니족 왕 아타케스가 서고트족과의 전투에서 전사하자, 알라니족은 군데리쿠스에게 의탁했고, 그는 반달족과 알라니족의 왕이 되었다.[1]

420년 히스파니아의 콤메스(Comes Hispaniarum)가 수에비족과 전쟁 중이던 반달족을 공격했고, 제국 부관(교구장)은 막시무스를 물리쳤지만, 반달족은 남쪽 바에티카로 이동했다. 수에비족과의 갈등으로 군데리쿠스는 히스파니아 남부 바에티카로 이동하여 실린기 반달족과 합류했다. 422년 반달족은 로마 군대를 격파하고, 425년에는 여러 도시를 약탈했다. 428년 군데리쿠스는 세비야를 다시 점령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작스럽게 죽었다.[1]

3. 1. 갈라이시아 왕국 건설

군데리쿠스는 406년 마지막 날에 그의 백성이 라인강 제국의 국경을 라인강 도하했을 때 하스딩기 반달족의 왕인 고디기셀의 아들이었다. 그 해 동안 반달족은 이미 로마의 동맹으로 정착한 프랑크족과의 전쟁에 깊이 관여하게 되었고, 프랑크족은 반달족을 막으려고 시도했다. 고디기셀은 전투에서 사망했고 군데리쿠스가 그를 계승했다.[1]

군데리쿠스와 그의 백성은 결국 409년 10월에 피레네 산맥을 넘어 이베리아 반도로 들어갔다. 그는 하스딩기 반달족과 함께 로마 속주인 갈라이시아(오늘날 이베리아 북서부)에 왕국을 세웠다. 그들은 418년 로마의 명령에 따라 서고트족에 의해 쫓겨났다. 같은 해 알라니족의 왕 아타케스가 당시 로마 제국의 동맹이었던 서고트족과의 전투에서 히스파니아에서 전사했고, 살아남은 알라니족 대부분은 군데리쿠스에게 호소했고, 그는 그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반달족과 알라니족의 왕이 되었다.[1]

3. 2. 서고트족, 알라니족과의 관계

406년 말, 군데리쿠스는 아버지 고디기셀이 마인츠 전투에서 사망한 후 하스딩기 반달족의 왕위를 계승했다. 그의 백성들은 라인강을 건너 로마 제국으로 들어왔다.[1] 409년 10월, 군데리쿠스는 반달족을 이끌고 피레네 산맥을 넘어 이베리아 반도로 들어갔다. 하스딩기 반달족은 로마 속주 갈라이시아(이베리아 북서부)에 정착했다.[1]

418년, 알라니족의 왕 아타케스가 서고트족과의 전투에서 사망하자, 살아남은 알라니족들은 군데리쿠스에게 의탁했다. 군데리쿠스는 그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반달족과 알라니족의 왕이 되었다.[1]

수에비족과의 갈등으로 군데리쿠스는 히스파니아 남부 바에티카로 이동했고, 그곳에서 실린기 반달족과 합류했다. 422년, 군데리쿠스는 코르도바 성벽 밖에서 로마 군대를 격파하기도 했다.[1]

3. 3. 수에비족과의 갈등과 바에티카 이동

그는 406년 마지막 날에 그의 백성이 라인강 제국의 국경을 라인강 도하했을 때 하스딩기 반달족 왕인 고디기셀의 아들이었다. 그 해 동안 반달족은 이미 로마의 동맹으로 정착한 프랑크족과의 전쟁에 깊이 관여하게 되었고, 프랑크족은 반달족을 막으려고 시도했다. 고디기셀은 전투에서 사망했고 군데리쿠스가 그를 계승했다.[1]

군데리쿠스와 그의 백성은 결국 409년 10월에 피레네 산맥을 넘어 이베리아 반도로 들어갔다. 그는 하스딩기 반달족과 함께 로마 속주인 갈라이시아(이베리아 북서부)에 왕국을 세웠다. 그들은 418년 로마의 명령에 따라 서고트족에 의해 쫓겨났다. 같은 해 알라니족의 왕 아타케스가 당시 로마 제국의 동맹이었던 서고트족과의 전투에서 히스파니아에서 전사했고, 살아남은 알라니족 대부분은 군데리쿠스에게 호소했고, 그는 그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반달족과 알라니족의 왕이 되었다.[1]

420년에는 히스파니아의 콤메스(Comes Hispaniarum)가 갈리시아에서 수에비족과 전쟁을 벌인 반달족을 공격했고, 그 부족들은 418년에 서고트족에게 심하게 패한 후 그곳에 갇혔다. 제국의 부관(교구장)은 420-421년에 이전 찬탈자 게론티우스(Gerontius, 409)의 아들 막시무스를 물리쳤지만, 그 결과 반달족은 남쪽 바에티카로 이동했다. 수에비족과의 갈등으로 그는 히스파니아 남부의 바에티카로 몰려갔고, 그곳에서 살아남은 실린기 반달족과 합류했다. 반달족은 420-421년에 남쪽 바에티카로 이동했다. 그들은 422년 코르도바 성벽 밖에서 군사령관 카스티누스가 이끄는 로마 군대를 격파했다.[1]

3. 4. 로마와의 충돌

406년 마지막 날, 군데리쿠스는 아버지 고디기셀이 이끌던 하스딩기 반달족과 함께 라인강을 건너 로마 제국으로 들어왔다.(라인강 도하)[1] 이 해에 반달족은 로마의 동맹이었던 프랑크족과 전쟁을 벌였는데, 고디기셀은 전투에서 사망하고 군데리쿠스가 왕위를 계승했다.[1]

군데리쿠스와 그의 백성은 409년 10월 피레네 산맥을 넘어 이베리아 반도로 들어갔다.[1] 그는 하스딩기 반달족과 함께 로마 속주 갈라이시아(이베리아 북서부)에 왕국을 세웠으나, 418년 로마의 명령을 받은 서고트족에게 쫓겨났다.[1] 같은 해 알라니족의 왕 아타케스가 서고트족과의 전투에서 전사하자, 살아남은 알라니족은 군데리쿠스에게 의탁했고, 그는 이를 수락하여 반달족과 알라니족의 왕이 되었다.[1]

420년, 히스파니아의 콤메스(Comes Hispaniarum)가 갈리시아에서 수에비족과 전쟁 중이던 반달족을 공격했다.[1] 제국의 부관(교구장)은 420-421년에 막시무스를 물리쳤지만, 그 결과 반달족은 남쪽 바에티카로 이동했다.[1] 수에비족과의 갈등으로 군데리쿠스는 히스파니아 남부의 바에티카로 이동하여 실린기 반달족과 합류했다.[1] 422년, 반달족은 코르도바 성벽 밖에서 군사령관 카스티누스가 이끄는 로마 군대를 격파했다.[1] 425년에는 마우레타니아 팅기타나, 발레아레스 제도, 카르타헤나와 세비야를 약탈했지만, 이 도시에 머물지는 않았다.[1] 군데리쿠스는 428년에 세비야를 다시 점령했다.[1] 429년, 반달족은 스페인을 떠났고, 이후 10년 동안 로마의 스페인은 수에비족의 지배하에 있는 갈리시아를 제외하고 온전했다.[1]

히다티우스는 428년에 군데리쿠스가 "바로 그 도시의 교회에 손을 댔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는 악마에게 사로잡혀 죽었다"고 기록했다.[1] 군데리쿠스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히다티우스의 기록은 군데리쿠스가 가톨릭 교회를 아리우스 교회로 개종시키려 시도했음을 암시한다.[1] 그는 히스팔리스에서 교회를 점령하려 시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작스럽게 죽었다.[1] 군데리쿠스가 428년 초에 죽은 후, 반달족은 그의 이복형제 가이세리크를 후계자로 선출했고, 가이세리크는 로마 아프리카를 침략하기 위해 이베리아 반도를 서고트족에게 남겨두고 떠났다.[1]

4. 죽음 (428년)

군데리쿠스는 428년에 히스팔리스(오늘날의 스페인 세비야)에서 사망했다. 히다티우스는 군데리쿠스가 "바로 그 도시의 교회에 손을 댔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는 악마에게 사로잡혀 죽었다"고 기록했다.[1] 군데리쿠스의 정확한 사인은 불분명하지만, 히다티우스의 기록은 그가 가톨릭 교회를 아리우스 교회로 개종시키려 시도했음을 시사한다. 그는 히스팔리스에서 교회를 점령하려 한 직후 예상치 못하게 사망했다. 428년 초 군데리쿠스가 사망한 후, 반달족은 그의 이복형제 가이세리크를 후계자로 선출했다. 가이세리크는 로마 아프리카를 침략하기 위해 이베리아 반도를 서고트족에게 남겨두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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