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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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회(金智會, ? ~ 1949년 4월 9일)는 대한민국 건국 초기의 육군 장교이자 여순 14연대 반란 사건의 핵심 인물이다.
생애본래 좌익 사상을 가진 인물로, 강동정치학원 전신인 평양학원 대남반에서 군사 훈련을 받고 1946년 말에 남파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확한 신상과 경력은 알려져 있지 않다. 월남 후 육군사관학교 3기로 졸업하고 남조선국방경비대 장교가 되었다. 그의 신원 보증인은 시조 시인 이은상이었다.
1948년 10월 19일, 제주 4·3 사건 진압을 위해 제주도로 투입될 예정이었던 14연대가 여수에 머물던 중, 군 내부의 숙군 작업과 제주 파병에 반대하던 남로당 계열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당시 14연대 중위였던 김지회는 반란군을 지휘했다.
14연대는 본래 광주에 주둔한 4연대 소속 1개 중대를 차출하여 모병제로 창설되었는데, 창설 당시 실무를 맡았던 김지회가 이승만과 박헌영 중 누구를 존경하는지를 물어 박헌영을 존경한다고 답한 군인만 선발하여 좌익 군인들이 많았다는 주장도 있다. 김지회는 남조선로동당 당원으로서 14연대 대전차포 중대장을 맡고 있었으며, 지창수가 주도한 반란이 우발적으로 일어나자 홍순석과 함께 반란군 세력을 이끌었다.
반란 이후 지리산으로 들어가 이현상의 유격 부대와 연계하여 토벌군과 교전을 벌였다. 덕유산과 지리산 일대에서 유격전을 펼치던 중 1949년 4월 9일, 남원군 방면 지리산에서 토벌대의 공격을 받아 총상을 입고 사망했다.
여순 14연대 반란 사건여순 14연대 반란 사건은 미군정 내에서 단선단정에 반대하는 세력과 출범 예정인 대한민국 정부 간의 유혈 충돌이 일어난 제주 4·3 사건을 계기로 발생했다. 14연대는 제주도에 투입될 예정이었으나, 군 내부의 숙군 작업과 제주 파병에 반대하던 남로당 계열 군인들이 여수시를 점령하고 순천시까지 진격했다. 김지회는 이 반란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조경순김지회의 부인 또는 연인으로 알려진 조경순은 제주도 출신으로 여순 14연대 반란 사건 당시 약 20세였다. 전남 지역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다가 병원에 입원한 김지회와 만나 결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지회가 여순 14연대 반란 사건을 일으켜 지리산으로 들어갈 때 함께 입산하여 여성 빨치산으로 활동했다. 조경순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기훈장 3급을 수여받았다.
기타
- 김지회는 1925년 3월 25일생으로 함경남도 함주군 출신이라는 주장도 있다. 함흥농업학교를 졸업한 후 이남의 군 내부 반란을 목적으로 북에서 훈련받고 남파된 간첩이라는 설도 있다.
- 최근에는 김지회를 다룬 역사 소설이 출간되기도 했다.
- 여순사건 당시 김지회와 함께 반란을 주도했던 인물로 지창수, 홍순석 등이 있다.
- 김지회는 육군사관학교 3기 출신이며, 이 기수는 사병 및 민간인 출신이 많았고 좌파적 경향을 띤 인물들도 상당수 있었다.
김지회는 여순 14연대 반란 사건의 주요 인물 중 한 명으로, 대한민국 건국 초기의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좌익 사상을 가지고 활동했던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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