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김창흡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본문

김창흡(金昌翕, 1653년 ~ 1722년)은 조선 후기의 문신, 학자, 시인입니다.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는 자익(子益), 호는 삼연(三淵)입니다. 시호는 문강(文康)입니다.
생애 및 활동:


  • 서울 출신으로, 좌의정 김상헌의 증손이며 영의정 김수항의 셋째 아들입니다.
  • 1673년(현종 14년)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이후로는 과거를 보지 않았습니다.
  • 백악(白岳) 기슭에 낙송루(洛誦樓)를 짓고 글을 읽으며 산수를 즐겼습니다.
  • 1681년(숙종 7년) 장악원 주부(主簿)에 임명되었으나 벼슬에 뜻이 없어 나가지 않았습니다.
  • 1689년 기사환국 때 아버지 김수항이 유배지 진도에서 사사(賜死)되자, 경기 포천에 은거했습니다.
  • 1696년 영의정 최석정(崔錫鼎)의 추천으로 서연관(書筵官)에 선발되었습니다.
  • 1703년 종부시 주부(主簿), 1705년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 익위(翊衛) 등에 임명되었습니다.
  • 1721년(경종 1년) 사헌부 집의(執義)에 제수되었고, 이듬해 세제시강원 진선(世弟侍講院 進善)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임했습니다.
  • 신임사화로 유배된 형 김창집이 사사되자 지병이 악화되어 세상을 떠났습니다.

학문 및 사상:

  • 이이(李珥)·송시열(宋時烈)의 학맥을 계승하였으며, 형 김창협과 함께 성리학과 문장으로 널리 이름을 떨쳤습니다.
  • 이기설에서는 이황(李滉)의 주리설(主理說)과 이이(李珥)의 주기설(主氣說)을 절충한 형 김창협과 같은 경향을 보였습니다.
  • '장자(莊子)'와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를 좋아하고 시도(詩道)에 힘썼습니다.
  •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는 불교 경전을 탐독하기도 했으나, 후에 주자의 글을 읽고 유학에 전념하였습니다.

저서:

  • '삼연집(三淵集)'
  • '심양일기(瀋陽日記)'
  • '안동김씨세보(安東金氏世譜)' (편집)

사후:

  •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문강(文康)입니다.
  • 숙종의 묘정에 배향되었습니다.
  • 강원도 강릉시 저동 호해정 영당에 제향되고 있습니다.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