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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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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조선시대에는 여러 명의 김필(金필)이라는 이름을 가진 인물이 있었습니다. 다음은 그들에 대한 정보입니다.
1. 김필(金珌, 1426년 ~ 1470년):


  • 본관은 영광(靈光)이며, 자는 화보(和甫) 또는 필옥(筆玉), 호는 설암(雪巖)입니다.
  • 21세에 생원시와 식년시 대과에 급제하여 이조좌랑, 의정부 사인, 홍문관 부제학, 경기도 관찰사, 이조참판 등을 역임했습니다.
  • 수양대군이 단종을 폐위하고 계유정난을 일으키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은거했습니다.
  • 단종을 그리워하여 겨울이면 단종의 초상화를 그렸다고 합니다.
  • 이후 조정의 부름을 받고 복귀하여 여러 관직을 역임하다가 사임하고 장흥으로 내려와 지내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 전라남도 유형문화유산인 장흥 사인정(舍人亭)은 김필이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건립한 누각입니다. 사인정 옆 바위에는 '제일강산(第一江山)'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습니다.

2. 김필(金潷, 1582년 ~ 1619년):

  •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자는 징보(澄甫), 호는 이안당(易安堂)입니다.
  • 조선시대 효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 어려서부터 영특하고 효심이 깊었으며, 유랑민을 구제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 묘소는 성남시 수정구 창곡동에 있습니다.

3. 김필(金泌):

  • 본관은 안산(安山)이며, 자는 자수(子修), 호는 모기재(慕箕齋)입니다.
  •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김식(金湜)의 문인입니다.
  • 1519년(중종 14) 별시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성균관전적이 되었습니다.
  •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유배되는 김식을 전송하다가 처벌을 받게 되자, 스스로 벼슬을 버리고 학문에만 열중하였습니다.
  • 1521년(중종 16) 성균관전적으로 신사무옥에 연루되었으나, 겨우 죄를 면한 뒤 미친 척하면서 공적인 일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4. 김필(金㻶, 생몰년 미상):

  • 1465년(세조 11), 세조는 판 군자감사 김필을 경상도 강도 추고경차관으로 삼아 사건을 조사하도록 했습니다.


이 외에도 동명이인인 김필이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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