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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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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종(都禮鍾, 1924년 12월 25일 ~ 1975년 4월 9일)은 대한민국의 교육자, 정치인, 기업인입니다. 8·15 광복 이후 민주화와 통일운동을 전개한 진보적 활동가로, 4·19 혁명 직후 대구 지역에서 민주민족청년동맹 경북도맹을 중심으로 활동했습니다.
주요 활동:


  • 1937년 대구 계림초등학교 졸업
  • 1939년 도쿄 서성중학 5년 과정 졸업
  • 경상북도 봉월, 영주, 서부 등지의 초등학교 교사 (1946년)
  • 대구대학 경제학과 졸업 (1953년)
  • 상주고등학교 교사, 대구대학 경제학과 강사
  • 경상북도 영주군 교육감 당선 (1960년, 미발령)
  • 민주민족청년동맹(민민청) 경북도맹 간사장 (1961년)
  •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민자통) 조직부 부위원장
  • 1차 인민혁명당 사건으로 투옥 (1964년)
  • 영남일보 영천지사장, 삼화토건 회장
  • 2차 인민혁명당 사건으로 사형 (1975년)
  • 2007년 재심 결과 무죄 판결

인민혁명당 사건:도예종은 1964년 제1차 인민혁명당 사건과 1974년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제2차 인민혁명당 사건)에 연루되었습니다. 두 사건 모두 중앙정보부에 의해 조작된 사건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1차 인민혁명당 사건: 1964년, 중앙정보부는 인민혁명당이 북한의 지령을 받고 국가 변란을 꾀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도예종은 이 사건으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 2차 인민혁명당 사건(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 1974년, 박정희 정부는 유신 반대 시위를 잠재우기 위해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를 조작하고, 도예종을 포함한 8명에게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1975년 4월 9일, 대법원 판결 18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되었습니다.


2007년, 법원은 재심을 통해 도예종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사망:도예종은 1975년 4월 9일, 2차 인민혁명당 사건으로 사형이 집행되어 5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부인 신동숙 여사는 2024년 1월 11일, 95세의 나이로 별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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