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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밍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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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래밍턴산은 파푸아뉴기니에 위치한 화산으로, 1951년 대규모 분화로 약 3,000명의 사망자를 발생시키고 5,000명 이상의 이재민을 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951년 1월 21일 대폭발로 산 북쪽이 파괴되고 화쇄류가 발생하여 반경 12km 지역에 큰 피해를 입혔으며, 특히 14km 떨어진 히가투루 지역에서 사망자가 속출했다. 이 분화로 인해 화산학자 토니 테일러가 조지 십자훈장을 받았으며, 대폭발 이후 용암 돔이 형성되었다. 래밍턴산은 1956년 분화를 마지막으로 현재는 활동을 중단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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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밍턴산 - [지명]에 관한 문서
지리 정보
기본 정보
1951년 대분화 후의 라밍턴산
1951년 대분화 후의 라밍턴산
이름라밍턴산
표고1,680 m
위치오로주, 파푸아뉴기니
산맥독립봉
산 종류성층 화산
마지막 분화1956년 1월

2. 1951년 분화

1951년 1월, 이전까지 사화산으로 여겨졌던 래밍턴산이 강력하게 분화하여 막대한 피해를 일으켰다. 이 분화는 역사 시대에 기록된 래밍턴산의 첫 분화였다.[6]

분화는 1월 18일 밤에 시작되어 1월 21일 격렬한 폭발로 이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산 북쪽 부분이 크게 파괴되고 파괴적인 화쇄류가 발생했다. 이 분화로 인해 약 3,000명이 사망하고 총 5,00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7][1] 5,000명 이상이 집을 잃는 등 심각한 인명 및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3] 극심한 피해 지역은 반경 약 12km에 달했다.[1]

2. 1. 분화의 진행

래밍턴산은 역사 시대를 통틀어 분화했다는 기록이 전혀 없었으며, 1951년의 분화가 역사상 최초의 기록된 분화이다.

분화는 1951년 1월 15일 산 정상 부근에서 산사태가 발생하면서 시작되었다. 다음 날부터는 분연을 내뿜고 몸으로 느껴지는 지진의 횟수도 증가했다. 사흘 뒤인 1월 18일 밤, 본격적인 화산 활동이 시작되었다.

1월 21일 오전 10시 40분경(현지 시간), 래밍턴산은 격렬한 대폭발을 일으켰다. 이 플리니식 분화로 분연 기둥이 상공 15000까지 치솟았고, 몇 분 후 분연 기둥의 일부가 무너져 내리면서 파괴적인 화쇄류(열운)가 발생했다. 이 화쇄류는 산 북쪽 사면을 따라 흘러내려 산기슭의 마을들을 덮쳤다. 이 과정에서 산 북쪽 부분의 상당 부분이 날아갔다.

화쇄류는 반경 약 12 지역에 극심한 피해를 입혔고, 화산에서 14 떨어진 히가투루(Higaturu) 등의 북부 마을들을 궤멸시켰다. 이 분화로 약 2,942명[1](또는 약 3,000명[7])이 사망하고 총 5,00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7] 5,000명 이상이 집을 잃었다.[3] 희생자 대부분은 뜨거운 열풍 흡입으로 인한 기도 화상과 폐수종으로 사망했다.[1] 화쇄류와 이후의 화산재 분출은 약 200의 토지를 파괴하고[1] 시내와 저수지를 메웠다.

현장에 도착한 구조대는 숨 막히는 경석 먼지와 유황 가스, 뜨거운 화산재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포폰데타에 마련된 구호 기지 역시 며칠 동안 이어진 추가 분화로 파괴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2월에도 추가적인 진동과 폭발이 이어졌으며, 3월 5일 늦게는 또 다른 주요 분화가 발생했다. 이 분화로 화산 돔의 큰 조각들이 3까지 날아갔고, 경석과 암석이 14 떨어진 곳까지 흘러내렸는데, 그 과정의 모든 나무에 불이 붙을 정도로 뜨거웠다.

대폭발 직후부터 산 정상 부근에서는 안산암질의 용암 돔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3월 초순 폭발로 잠시 소멸되었으나 다시 나타나 성장하여, 다음 해 1월에는 높이 570, 부피 1km³에 달했다. 이 용암 돔은 현재도 남아있다.

화산학자이자 전 호주 육군 준위였던 토니 테일러(Tony Taylor)는 분화 기간 동안 화산을 연구하며 구조대의 안전한 진입 시점을 조언하여 인명 구조에 기여했다. 그는 이 공로로 1952년 조지 십자훈장을 받았다.[4] 분화의 상세 내용과 피해 상황은 오스트레일리아의 화산학자 조지 테일러(George Taylor)에 의해 조사되었다.

래밍턴산은 1956년의 분화를 마지막으로 현재는 활동을 멈춘 상태이다.

2. 2. 피해 상황

1951년 래밍턴산의 강력한 분화는 약 3,000명의 사망자를 포함하여 총 5,000명의 사상자를 냈다.[7][1] 또한 5,000명 이상이 집을 잃었다.[3] 이 분화는 역사 시대 기록상 래밍턴산의 첫 분화였다.

분화는 1951년 1월 15일 산 정상 부근의 산사태로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으며, 다음 날부터 분연이 관측되고 지진 발생 횟수도 증가했다. 1월 18일 밤, 본격적인 화산 활동이 시작되었고, 사흘 뒤인 1월 21일 오전 10시 40분경 대규모 분화가 발생했다. 이 플리니식 분화는 분연 기둥을 상공 15000m까지 치솟게 했으며, 분연주 일부가 붕괴하며 형성된 화쇄류(열운)가 산비탈을 따라 남북으로 흘러내렸다.

화쇄류는 산기슭의 마을들을 덮쳤고, 특히 북쪽에 위치한 히가투루(Higaturu) 마을은 거의 완전히 파괴되었다. 희생자 대부분은 뜨거운 열풍을 흡입하여 기도 화상이나 폐부종으로 사망했다.[1] 극심한 피해 지역은 반경 약 12km에 달했으며, 화산에서 14km 떨어진 히가투루 인근 주민들까지 폭발이나 화재로 목숨을 잃었다.[1] 화쇄류와 뒤이은 화산재 분출로 인해 하천과 저수지가 메워지는 등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다.[1]

분화 직후 산 정상 부근에서는 안산암질의 용암 돔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용암 돔은 3월 초의 폭발로 잠시 소멸되었으나 다시 생성되어 성장했고, 다음 해 1월에는 높이 570m, 부피 1 km3에 달했다. 이 용암 돔은 현재까지 남아있다.

현장에 도착한 구조대는 숨 막히는 경석 먼지와 유황 가스, 뜨거운 화산재 때문에 구조 활동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포폰데타에 설치된 구호 전진 기지 역시 며칠 동안 계속된 추가 분화로 파괴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2월에도 추가적인 진동과 폭발이 이어졌다. 3월 5일에는 다시 큰 분화가 발생하여 화산 돔의 큰 조각들이 3km까지 날아가고, 경석과 암석이 14km 거리까지 흘러내렸다. 이때 발생한 화쇄류는 주변 나무를 모두 태울 정도로 뜨거웠으며, 약 200km2의 면적을 파괴했다.

화산학자이자 전 호주 육군 장교였던 토니 테일러는 분화 기간 동안 화산을 연구하며 구조대가 안전하게 진입할 수 있는 시기를 조언하여 인명 구조에 크게 기여했다. 그는 이 공로로 1952년 조지 십자훈장을 받았다.[4]

래밍턴산은 1956년 분화를 마지막으로 현재까지 활동을 멈춘 상태이다.

2. 3. 토니 테일러의 공헌

화산학자이자 전 호주 육군 준위였던 토니 테일러는 1951년 분화가 진행되는 동안 래밍턴산을 연구했다. 그의 연구는 구조대가 언제 안전하게 재난 지역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 판단하는 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여 인명 구조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테일러는 1952년 조지 십자훈장을 받았다.[4]

2. 4. 용암 돔 형성

1951년 1월 21일 대분화 직후, 산 정상 부근에서 안산암질의 용암 돔이 나타나 성장을 시작했다. 이 용암 돔은 3월 초순에 발생한 폭발로 인해 한 차례 사라졌으나, 이후 다시 나타나 계속 성장했다. 다음 해인 1952년 1월에는 높이가 570m, 부피는 1km3에 이르렀다. 이때 형성된 용암 돔은 현재까지 남아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화산학자 조지 테일러는 이 분화의 상세한 내용과 피해 상황을 조사했다.

참조

[1] 간행물
[2] 서적 The Australian Encyclopaedia Michigan State University Press
[3] 문서 One figure for total number of deaths is 3,466 people
[4] 웹사이트 George Anthony Morgan TAYLOR, GC http://www.gc-databa[...] 2007-01-16
[5] 간행물 2012-11-29
[6] 서적 The Australian Encyclopaedia Michigan State University Press
[7] 간행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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