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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성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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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마성린(馬聖麟, 1727년 ~ 1798년)은 조선 후기의 서예가입니다. 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성희(聖羲), 호는 미산(眉山)입니다.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역임했습니다.
생애 및 활동:


  • 1727년 한성부(지금의 서울특별시 중구)에서 태어났습니다.
  • 어려서부터 글과 글씨에 재능을 보였으며, 김순간, 정택주 등과 함께 인왕산 누각동 김첨지 집에서 글을 배웠습니다.
  • 평생 글씨와 더불어 지냈으며, 해서(楷書)와 초서(草書)에 뛰어났습니다. 특히 해서를 잘 썼고, 초서도 그에 못지않았다고 합니다.
  • 간결한 선조(線調)를 유지하면서 독자성을 추구한 서풍을 보입니다.
  • 넉넉한 살림으로 위항시인(委巷詩人)들의 후원자 역할을 했습니다.
  • 위항시인들의 모임인 백사(白社)와 구로회(九老會)의 동인으로 활동했습니다.
  • 주요 작품으로는 현판 등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가족 관계:

  • 5대조 마시봉(馬時鳳)은 호조서리, 증조부 마점석(馬點碩)은 내수사 별제(別提), 부 마수한(馬壽漢)은 내수사 제원이었습니다.
  • 15세에 첨지 한성만의 여섯째 딸과 혼인하였습니다.

평가:

  • 당시 사람들은 그의 글씨를 신필(神筆)이라 칭송했습니다.
  • 조선 후기 서예사에서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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