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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호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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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조선 시대 만호(萬戶)는 종4품 무관 관직으로, 지방 군영인 진(鎭)의 장수, 즉 진영장(鎭營將)이었습니다. 육군은 병마만호(兵馬萬戶), 수군은 수군만호(水軍萬戶)로 불렸는데, 병마만호는 평안도와 함경도 일부에 설치되었고, 대부분은 수군만호로 운영되었습니다.
만호의 역할 및 임명


  • 각 도(道)의 진(鎭)에 소속된 종사품 무관직으로, 해당 지역의 군사적 방어를 책임졌습니다.
  • 원래 몽골의 군사 제도를 모방한 고려의 군직에서 유래했습니다.
  • 임기는 가족 동반 여부에 따라 달랐으며, 무예 시험을 통해 임명되었지만, 무과 합격자나 겸사복, 내금위는 시험 없이 임명되기도 했습니다.

만호의 변천

  • 조선 초기에는 만호, 부만호, 천호, 백호 등의 관직이 있었으나 점차 정리되었습니다.
  • 1458년(세조 4) 영진체제가 진관체제로 바뀌면서 만호는 전담 무장으로서 일선을 지키는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 일부 지역에서는 수령이 겸직하기도 했습니다.

만호 관련 추가 정보

  • 충무공 이순신은 젊은 시절 녹둔도 전투에서 조산보 만호를 지낸 바 있습니다.
  • 목포시의 만호동은 전라우수영 소속 만호진(목포진)이 있던 곳에서 유래한 지명입니다.
  • 부산 가덕도의 천성만호진은 왜구 침입을 막기 위한 군사적 요충지였습니다.
  • 안산 지역에는 초지량영(草芝梁營)을 총괄하는 수군만호가 배치되었습니다.


만호는 조선 시대 군사 제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으며, 특히 해안 방어에 있어 핵심적인 직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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