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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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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민영모(閔令謨, 1115년 ~ 1194년)는 고려의 문신입니다. 본관은 여흥(驪興)이며, 시호는 문경(文景)입니다.
생애:


  • 1138년(인종 16년) 문과에 급제했습니다.
  • 이부원외랑을 역임했습니다.
  • 1175년(명종 5년) 형부시랑으로 고시관이 되어 승구원(承丘源) 및 방희진(方希進) 등을 합격시켰습니다.
  •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를 거쳐 판병부사(判兵部事)가 되었습니다.
  • 1179년(명종 9년) 중서시랑 평장사판이부사(中書侍郞平章事判吏部事)가 되었습니다.
  • 1180년(명종 10년) 태자태사(太子太師)로 전임되었습니다.
  • 1183년(명종 13년) 노령으로 은퇴를 요청하였으나, 이광정의 거짓 상표로 인해 자청하여 퇴직하였습니다.

가족 관계:

  • 아버지: 민의(閔懿) (고려시대 호부원외랑)
  • 처: 배씨(裵氏)
  • 아들: 민식(閔湜), 민공규(閔公珪)

묘소: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사창리 민단에 묘소가 있습니다. 묘는 사창리 북동쪽 뒤편에 있는 경모재(景慕齋) 뒤 위쪽에 있습니다. 묘소는 실전되어 단비(壇碑)를 갖춘 묘단으로 대신하였습니다. 묘단비 앞면에는 '고려금자광록대부문하시랑평장사시문경민영모지묘단비(高麗金紫光祿大夫門下侍郞平章事諡文景閔令謨之墓壇碑)'라고 쓰여 있습니다.
평가:민영모는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했으며, 과거에 응시했을 때 지은 부(賦)는 격식에 맞지 않았으나, 지공거 최유(崔濡)는 그의 글에서 비범한 기개를 보았습니다. 그는 겁이 많고 말을 더듬었으며 실천력이 다소 떨어졌다고 전해지며, 정계에 있을 때 청탁을 받았으며 전주(銓注)를 함부로 하였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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