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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종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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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민종묵(閔種默, 1835년 양력 2월 14일 ~ 1916년 양력 7월 20일)은 조선 말기의 관료이자 일제강점기에 조선귀족 작위를 받은 인물입니다. 호는 한산(翰山)이며, 본관은 여흥(驪興)입니다.
주요 생애 및 활동:


  • 관료 경력: 1874년 증광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후, 사은정사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왔습니다. 이후 홍문관 부수찬, 사간원 지평, 사복시 정, 승지 등을 역임했습니다. 1881년에는 신사유람단의 일원으로 일본 외무성을 시찰하고, 통리기무아문에서 통상사당상에 임명되었습니다. 이후 성균관 대사성, 한성부 우윤, 병조참판, 이조참판, 한성부 판윤, 형조판서, 예조판서, 홍문관 제학, 공조판서, 사헌부 대사헌 등 요직을 두루 거쳤습니다.
  • 외교 및 통상 관련 활동: 1889년 독판교섭통상사무가 되어 방곡령 사건, 조일통어장정 체결, 제주어채 문제 등 외교 및 통상 문제를 주로 담당했습니다. 특히, 1889년 일본 어선단의 울릉도 불법 침입 사건에 대해 일본 공사관에 항의하고, 처벌과 배상을 요구하여 사죄를 받아내기도 했습니다.
  • 친일 행적: 구한말 친러파 관료이자 정치가였으나, 일제강점기에는 조선귀족 남작 작위를 받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분류됩니다.

추가 정보:

  • 자는 현경(玄卿)입니다.
  • 민승세(閔承世)의 아들이며 민명세(閔命世)에게 입양되었습니다.
  • 1882년 임오군란 이후 진하사은겸세폐부사로 청나라의 세관 업무를 시찰하고 귀국했습니다.
  • 1892년 함경북도안무사를 역임했습니다.


민종묵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민종묵 초상
이름민종묵
출생일1835년 2월 14일
사망일1916년 7월 20일
작위남작
후임자민철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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