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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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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박승선 (朴承善, 1876년 6월 9일 ~ 1950년 6월 30일?)은 조선 사람이자 일제강점기 사람으로,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첫 번째 부인이며, 이승만의 장남 이봉수(태산)의 어머니이다. 본관은 음죽 박씨이다.
생애1876년 아버지 박춘겸과 어머니 성주 도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왕실 족보인 선원록 양녕대군파보에는 1875년생으로 기록되어 있다. 박승선은 생활력이 강하고 불같은 성격을 지녔으며, 근대식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어머니 성주 도씨는 궁궐 나인이었으나 1882년 임오군란 때 난군에 의해 살해되었다. 박승선은 한성부 우수재(현재의 서울특별시 후암동)에 있던 외가에서 성장했다.

1891년, 주변의 중매로 이승만과 결혼했다. 첫 아들을 낳았으나 사산했고, 1898년에 아들 봉수를 낳았으나 1904년에 사망했다. 이후 태산은 미국에서 전염병으로 사망하여 그곳에 묻혔다. 이승만과 박승선은 종교 차이로 사이가 틀어졌다고 한다. 1912년 이승만이 망명하면서 박승선과의 연락을 끊었다. 1960년대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당시 박승선은 창신동 자택에서 홀로 가혹한 생활을 했다고 전해진다. 이승만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반으로 추대될 당시에도 호적상 부부였다. 이승만은 박승선에게 창신동 626번지 일대 약 6000평의 땅을 남겼으며, 박승선은 그 부지에 보종학원을 설립하여 기부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공식 호적에는 이승만의 아내로 등재되어 있었으며, 1911년~1912년부터 이승만이 박승선을 멀리했음에도 1949년까지 호적상 부부 관계를 유지했다. 1950년 한국전쟁 중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 박승선의 존재 및 이승만의 혼인무효소송은 이승만 측근과 소수만이 알고 있다가 1960년대 이후 알려졌다.
사후박승선의 정확한 사망일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1950년 6월 30일경으로 추정된다. 일설에는 인민군이 간 줄 알고 대문에 붙은 삐라를 떼려다 인민군이 쏜 총에 맞아 사망했다고 한다. 납북되었다는 설도 있다.
가족 관계


  • 아버지: 박춘겸
  • 어머니: 성주 도씨
  • 배우자: 이승만
  • 자녀: 아들 이봉수(태산), 양자 이은수, 이철호

여담

  • 박승선의 원래 이름은 박흥진이었으나, 남편 이승만을 너무 사랑하여 남편의 이름 '승(承)'자를 따서 박승선으로 개명했다고 한다.
  • 오른쪽 눈이 안 보이는 맹인이었다고 한다.
  • 그녀의 아버지는 1904년 딸, 사위, 외손자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적이 있다.
  • 양자 이은수에 따르면, 박승선의 어머니는 임오군란 당시 난병에게 살해당했다고 한다.
  • 이승만은 박승선과 별거 후 프란체스카 도너와 재혼하였다.

기타박승선이라는 이름은 다음과 같은 인물들과도 관련이 있다.

  • 박승선 : 플로잉미디어의 인사담당자
  • 박승선 : 우아한청년들 라이더정책실장
  • 박승선 : 중고차 딜러
  • 박승선 : 한국연합회 초대 회장
  • 박승선 : 조선시대 무인 박승선의 처 양씨


이 문서는 여러 박승선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을 설명하고 있으며, 위에서 설명된 인물은 이승만의 첫번째 부인인 박승선에 대한 정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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