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부리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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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이부리군은 태국 파타니주에 위치한 군이다. 과거 파타니 술탄국 분할 당시 므앙 중 하나였으며, 20세기 초 행정 개혁으로 몬톤 파타니의 주로 편입되었다. 1909년 나라티왓주에 일부 지역을 할당하면서 면적이 줄어들었으며, 1932년에는 주가 폐지되어 파타니주와 나라티왓주로 분할되었다. 사이부리군에는 차이나타운인 '치노 캄퐁'이 있으며, 중국-말레이 건축 양식의 상점주택이 특징이다. 현재는 11개의 탐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탐본은 행정 기구를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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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부리군 - [지명]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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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로마자 표기 | Sai Buri |
태국어 표기 | สายบุรี |
태국어 발음 | sǎːj bū.rīː |
종류 | 군 |
위치 | 태국 빠따니 주 |
![]() | |
중심지 | 탈루반 |
통계 | |
인구 | 64,260명 (2009년) |
인구 밀도 | 353.6명/km² |
면적 | 178.424km² |
행정 | |
우편 번호 | 94110 |
지역 코드 | 9407 |
좌표 | 6°42′5″N 101°37′3″E |
2. 역사
사이부리는 과거 파타니 술탄국이 분할된 7개의 ''므앙'' 중 하나로 시작하여, 20세기 초 태국의 ''테사피반'' 행정 개혁을 통해 몬톤 파타니의 한 주가 되었다. 이후 행정 구역 조정과 개편을 거쳐 1932년 주가 폐지되고, 북부는 파타니 주, 남부는 나라티왓 주에 편입되는 변화를 겪었다.[1][2]
지역의 명칭 또한 변화를 거듭했는데, 처음에는 단순히 '므앙'으로 불리다가 1917년 '탈루반'으로, 그리고 1938년에 현재의 '사이부리'로 개칭되었다.[3][4]
역사적으로 사이부리는 중요한 상업 항구였으며, 몬순 시기에 배를 정박하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이로 인해 중국인 상인들이 무역을 위해 이곳에 정착하기 시작했고, 특히 푸젠(福建) 출신들이 초기 정착민의 다수를 이루었다. 이들이 형성한 공동체는 현지에서 '치노 캄퐁'(Cino Kampung|치노 캄풍msa)이라 불리는 차이나타운 또는 구시가지로 발전했으며, 약 200~300년의 역사를 지닌다. 이곳에는 중국-말레이 건축 양식이 혼합된 독특한 상점주택들이 남아 있어 역사적 가치를 더한다.[5]
2. 1. 파타니 술탄국 시대

사이부리는 원래 파타니 술탄국이 분할되면서 형성된 7개의 ''므앙'' 중 하나였다. 20세기 초 ''테사피반'' 행정 개혁이 이루어지면서 몬톤 파타니에 속한 하나의 주(州)가 되었다. 그러나 1909년, 이응고(Yi-ngo) 지역과 오늘날의 므앙 나라티왓 구(Mueang Narathiwat district)에 해당하는 지역이 당시 ''므앙'' 방나라(Bang Nara, 현재의 나라티왓 주)에 편입되면서 사이부리 주의 면적은 줄어들었다. 결국 1932년에 주는 폐지되었고, 북부 지역은 파타니 주에, 남부 지역은 나라티왓 주에 각각 통합되었다.[2]
처음에는 단순히 "므앙"으로 불렸으나, 1917년에 "탈루반"(Taluban)으로 이름이 바뀌었고,[3] 1938년에는 다시 "사이부리"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른다.[4]
사이부리에는 현지에서 ''치노 캄퐁''(Cino Kampung|치노 캄풍ms)이라 불리는 차이나타운 또는 구시가지가 있다. ''치노 캄퐁''은 켈란탄-파타니 말레이 방언으로, ''치노''는 중국인을, ''캄퐁''은 농촌이나 마을을 의미하여 "교외 지역의 차이나타운" 정도로 해석될 수 있다. 이 공동체는 약 200~3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과거 사이부리는 이 지역의 중요한 상업 항구였으며, 특히 몬순 기간 동안 배들이 정박하기 좋은 해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많은 중국 상인들이 무역을 위해 이곳을 찾았고, 처음 정착한 이들은 주로 푸젠(福建) 출신이었다.
치노 캄퐁 지역의 가장 큰 특징은 역사적인 건물들이다. 대부분 중국-말레이 건축 양식이 혼합된 2층 목골조 반 콘크리트 상점주택 형태를 띠고 있으며, 이러한 독특한 양식 자체를 "치노 캄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는 태국 내에서는 유일하며, 전 세계적으로도 드문 건축 양식으로 알려져 있다.[5]
2. 2. 몬톤 파타니 시대
사이부리는 과거 파타니 술탄국이 분할되면서 생긴 7개의 ''므앙''(주) 중 하나였다. 20세기 초 시암(태국)에서 시행된 ''테사피반'' 행정 개혁 과정에서 몬톤 파타니에 속한 하나의 주가 되었다.
1909년에는 행정 구역 조정이 있었는데, 이응고와 오늘날의 므앙 나라티왓 구에 해당하는 지역이 당시 ''므앙'' 방나라(현재의 나라티왓 주)로 편입되면서 사이부리 주의 면적이 줄어들었다.
이후 1932년에 주는 완전히 폐지되었고, 북부 지역은 파타니 주에, 남부 지역은 나라티왓 주에 각각 나뉘어 편입되었다.[2]
한편, 행정 구역 명칭에도 변화가 있었다. 원래 단순히 '므앙'으로 불리던 이 지역은 1917년에 '탈루반'으로 이름이 바뀌었다.[3] 그리고 1938년에 다시 현재의 이름인 '사이부리'로 개칭되었다.[4]
2. 3. 주 폐지 및 분할 편입
사이부리는 원래 파타니 술탄국이 분할되면서 생긴 7개의 ''므앙'' 중 하나였다. 20세기 초 ''테사피반'' 행정 개혁이 이루어지면서 몬톤 파타니에 속한 하나의 주가 되었다. 1909년에는 이응고(Yi-ngo)와 오늘날의 므앙 나라티왓(Mueang Narathiwat) 구에 해당하는 지역이 당시 방나라(Bang Nara, 현재의 나라티왓 주) ''므앙''으로 편입되면서 사이부리 주의 면적이 줄어들었다. 이후 1932년에 사이부리 주는 폐지되었고, 북부 지역은 파타니 주에, 남부 지역은 나라티왓 주에 각각 편입되었다.[2]
2. 4. 지명 변경
원래 단순히 므앙으로 불리던 이 지역은 1917년에 "탈루반"으로 개칭되었다.[3] 1938년에는 "사이부리"로 개칭되었다.[4]2. 5. 치노 캄퐁
사이부리의 차이나타운 또는 구시가지는 현지에서 치노 캄퐁이라고 불린다. 이곳에서는 켈란탄-파타니 말레이 방언이 사용되는데, '치노'는 중국인을, '캄퐁'은 농촌 지역을 뜻한다. 따라서 치노 캄퐁은 "교외 지역의 차이나타운"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 공동체는 약 200년에서 3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과거 사이부리는 이 지역의 중요한 상업 항구였으며, 특히 몬순 기간 동안 배를 안전하게 정박할 수 있는 해변이 있었다. 이러한 지리적 이점 때문에 많은 중국인 상인들이 무역을 위해 이곳을 찾았고, 그중 복건(푸젠)족이 처음으로 정착했다.
치노 캄퐁의 가장 큰 특징은 역사적인 건물들이다. 대부분 중국-말레이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2층짜리 목골조 반 콘크리트 상점주택 형태를 띠고 있으며, 이러한 양식의 건물들은 태국 내에서는 이곳이 유일하고, 전 세계적으로도 드문 편이다.[5]
3. 지리
사이부리군은 여러 지역과 경계를 접하고 있다. 동남쪽에서 시계 방향으로 파타니 주의 마이 캔, 나라티왓 주의 바초, 다시 파타니 주의 카포, 퉁 양 댕, 파나레과 인접한다. 동쪽으로는 태국만에 접해 있다.
4. 행정 구역
이 지역은 11개의 하위 구역(''탐본'')으로 나뉘며, 이는 다시 64개의 마을(''무반'')로 세분화된다. 탈루반은 하위 구역 자치체(''테사반 탐본'')로, 탐본 탈루반을 포함한다. 다른 각 하위 구역에는 탐본 행정 기구 (TAO)가 있다.
번호 | 이름 | 태국어 | 무반 | 인구[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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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탈루반 | {{lang|tha|ตะลุบัน|} | } || - || 13,7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