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훈 (185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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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1858년에 태어난 서상훈(徐相勛)은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의 관료이자,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 참의를 지낸 인물입니다. 다음은 서상훈에 대한 자세한 정보입니다.
- 출생 및 사망: 1858년 3월 15일 경상북도 대구에서 출생하여 1943년 7월 31일에 사망했습니다.
- 본관 및 자: 본관은 대구(大丘)이며, 자는 군필(君弼), 호는 초원(初園)입니다.
- 가족 관계: 아버지는 예조판서 서정순(徐正淳)입니다.
- 관직 경력:
- 1885년 진사시에 합격했습니다.
- 1889년 경무대(景武臺) 문과시(文科試) 병과에 급제했습니다.
- 1891년 시강원(侍講院) 겸설서(兼說書)를 시작으로 예문관 검열, 탁지부 참서관, 중추원 의관, 비서원승, 성균관장, 궁내부 수학원 차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 중추원 부찬의(1910\~1940)를 지냈습니다.
- 기타 활동:
- 1899년 사립흥화학교에 찬성금 2원을 기부했습니다.
- 1907년 대동학회 발기인 겸 총무·평의원, 대동전문학교 찬무원으로 참여했습니다.
- 1908년 기호흥학회 찬무원으로 활동했습니다.
-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 경성협찬회 회원이었습니다.
- 1920년 대동사문회 창립 이사였습니다.
- 1929년 조선박람회 평의원이었습니다.
- 1931년 단군신전봉찬회 고문을 맡았습니다.
- 1932년 조선유교회(朝鮮儒敎會) 명리원(明理院) 법정(法正)이었습니다.
- 1935년 『일월시보(日月時報)』 경학부 고문을 지냈습니다.
- 1939년 조선유도연합회에 참여했습니다.
- 1941년 임전보국단 경성지역 발기인으로 참여했습니다.
- 수상 내역: 일본 정부로부터 1911년 한국합병기념장, 1915년과 1928년 대례기념장, 1922년과 1928년 서보장 등을 받았습니다.
- 친일 행적: 일제 강점기 동안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역임하며 일제 지배 정책에 협력하였고, 여러 친일 단체에서 활동했습니다. 이러한 행적으로 인해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분류됩니다.
'서상훈'이라는 이름은 동명이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1971년생 만화가, 대한민국 1호 콘텐츠 프로듀서, 전문의 서상훈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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