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중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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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오중화(吳仲和, 1325년 ~ 1396년)는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입니다. 본관은 동복(同福)이며, 아버지는 구성군(龜城君) 오선(吳僐)입니다. 어머니는 밀직사사좌부승지 송진의 딸 여산 송씨이며, 할머니는 공민왕의 생모인 명덕태후(明德太后)의 고종사촌인 이천신씨입니다.
오중화의 처음 이름은 법화(法華)이고, 다른 이름은 성석(宬碩)입니다. 호는 탄수(灘叟)입니다. 그는 고려 충혜왕 원년(1331)에 태어나 공민왕 5년(1356년)에 삼사좌복야 벼슬을 제수받았고, 1358년에는 검교참찬문하부사에 올랐습니다.
오중화는 조정 정사(朝廷政事)에 재임 중 요승 신돈의 난에 아버지를 모시고 두언(杜言)에 가서 벼슬을 그만두었습니다. 이후 지월리(池月里)로 돌아와 집에 있는 동안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재물에 욕심 없이 의리를 중하게 여기고 불교를 멀리하였습니다.
그는 학문에 정진하여 스승이 "무엇 하려고 밤낮없이 독서에만 열중하느냐"라고 묻자, "어려서 면학은 광명한 태양이 뜨는 것 같이 떠서 넓어지고, 늙어서 배움은 촛불처럼 빛이 나지 않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또한 아호를 쌍청(雙淸)이라고 하니 그 명성이 향인들 사이에 드높았습니다.
오중화는 강직하고 단정한 성품으로 불의에 굴하지 않았습니다. 세태의 변천으로 빛을 보지 못하고 정해(丁亥) 시월에 별세하였으며, 선친의 묘 아래 동녘을 향한 유좌(酉坐)에 안장되었습니다.
오중화는 영가군부인(永嘉群夫人) 권씨와 사이에 2남 4녀를 두었습니다. 장남은 정평공 휘 승이며, 차남은 제보이나 일찍 요절하였습니다.
2004년 후손들이 오중화의 묘성을 정화하고 묘비를 세웠습니다.
추가 정보:
- 관직: 검교참찬 판문하부사, 판밀직사사, 삼사좌복야
- 가족 관계:
- 아버지: 오선(吳僐)
- 어머니: 여산 송씨 (송진의 딸)
- 아내: 영가군부인 권씨 (현복군 권염의 딸)
- 자녀: 2남 4녀 (장남: 오승)
- 기타:
- 공민왕 때 태조 이성계와 인연을 맺음.
- 우왕 때 관마색제조를 역임했으나, 탄핵을 받아 파직됨.
오중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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