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 이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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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옥천 이지당(沃川 二止堂)은 충청북도 옥천군 군북면 이백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건축물입니다. 1977년 12월 6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42호로 지정되었다가 2020년 12월 28일 보물로 승격되었습니다.
이지당은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이자 의병장이었던 중봉 조헌(1544∼1592)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서당으로, 처음에는 각신마을 앞에 있어 각신서당(覺新書堂)이라고 불렸습니다. 조헌은 임진왜란 때 옥천에서 의병을 일으켜 청주성을 탈환하고 금산 전투에서 순절했습니다.
조헌 사후 80여 년 뒤인 1674년(현종 14)에 군수 김만균과 마을 선비들이 서당을 다시 세우고, 우암 송시열(1607∼1689)이 이 지역의 영재들을 모아 교육하면서 많은 인재를 배출했습니다. 송시열은 《시경》의 “높은 산을 우러르고, 큰 길을 다닌다(高山仰止 景行行止)”라는 구절에서 ‘지(止)’자를 따서 ‘이지당(二止堂)’이라고 이름을 바꾸고 현판을 썼습니다. 하지만 이지당의 '二止'는 조헌이 학문의 강요(綱要)로 삼아 암송하며 실천했다는 《대학(大學)》의 “자식이 되어서는 효도에 그치고, 신하가 되어서는 공경에 그친다(爲人子止於孝, 爲人臣止於敬)”라는 구절에 나오는 두 가지 '止'를 인용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현재의 건물은 1901년(광무 5)에 옥천의 금씨, 이씨, 조씨, 안씨 네 문중에서 중건한 것입니다. 이지당은 본채와 누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본채는 정면 7칸, 측면 1칸의 강당 건물로,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입니다. 가운데 3칸은 대청이고 양쪽 2칸은 거실입니다. 누각은 앞면 1칸, 측면 1칸 규모의 팔작지붕으로, 높은 단 위에 누마루를 두고 주변에 난간을 둘렀습니다. 특히 본채 양쪽에 돌출한 누각을 두어 경치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한 점이 특징적입니다.
이지당은 서화천이 굽어보이는 산비탈에 자리 잡고 있어 앞으로는 너럭바위와 유유히 흐르는 강이 펼쳐지고, 뒤로는 기암괴석이 받쳐주고 있어 풍수지리적으로 명당터에 지어진 건물이라고 합니다. 대청에는 조헌이 직접 쓴 '각신서당(覺新書堂)' 현판을 비롯하여 「이지당기」, 「이지당강학조약」 등이 남아있습니다.
옥천 이지당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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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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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 옥천 이지당 (沃川 二止堂) |
유형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
지정 번호 | 42 |
지정일 | 1977년 12월 6일 |
주소 | 충청북도 옥천군 군북면 이백6길 126 (이백리) |
수량 | 2동 |
문화재청 ID | 21,00420000,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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