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갑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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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이갑녕(李甲寧, 1904년 9월 20일 ~ ?)은 일제강점기의 관료이자 친일반민족행위자입니다. 일본식 이름은 靖原甲寧(세이겐 고네이)입니다.
생애 및 활동:
- 1930년 일본 도쿄 제국대학 농학부를 졸업했습니다.
- 중국 상하이로 이주하여 1934년부터 1942년까지 일본 외무성에서 촉탁으로 일했습니다.
- 1935년부터 1941년까지 상해거류조선인회(上海居留朝鮮人會) 회장을 지냈습니다.
- 1937년 상하이 주재 일본 총영사관에서 경찰촉탁으로 일했습니다.
- 1939년 상해거류조선인회 기관지 《광화》(光化)의 발행인과 상하이 양정유치원(養正幼稚園) 원장을 지냈습니다.
- 1940년 상해계림청년단(上海鷄林靑年團) 단장을 지냈습니다.
- 1941년부터 1943년까지 상해극예술연구회 회장을 지냈습니다.
- 1943년 상해계림회 평의원, 일본 대동아성 촉탁, 상하이 주재 일본대사관 촉탁을 지냈습니다.
친일 행적:
- 중일 전쟁 당시 중국 상하이에 거주하던 조선인들을 상대로 일제의 황민화 정책과 내선일체 정책을 적극 선전했습니다.
- 식민당국과 연계하여 상해 지역의 민족운동과 활동을 방해했습니다.
-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일본군의 중국 침략을 지원하기 위하여 군수품 운반, 정보수집, 국방헌금 모금 등에 조선인을 조직적으로 동원했습니다.
- 1937년 11월 11일, 상하이에서 조선민족혁명당 소속 당원 3명에게 공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광복 이후:
- 1945년 일본으로 도피했습니다.
- 1949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로부터 수배를 받았습니다.
-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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