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 (조선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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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이동훈(李東薰, 1894년 8월 2일 ~ 1948년 7월 6일)은 일제강점기의 조선귀족으로, 호는 소송(小松), 본관은 전주이며 본적은 경성부 황금정(현재의 서울특별시 을지로) 2정목입니다.
생애 및 활동:
- 1910년 10월 「조선귀족령」에 따라 남작 작위를 받은 이근호(李根澔)의 아들입니다.
- 1914년 12월 이근호의 사자(嗣子)로 선정되어 종5위에 서위(敍位)되면서 천황이 주는 사령서를 받았습니다.
- 1923년 3월 이근호가 사망하자 5월에 작위를 승계하고 천황이 주는 습작사령서를 받았습니다.
- 1925년 10월에 정5위 남작이 되었고, 1928년 11월 쇼와(昭和)천황 즉위기념 대례기념장을 받았습니다.
- 1937년 9월에 종4위 남작이 되었습니다.
- 1939년 9월 동아물산주식회사를 설립하고 대표취체역에 취임했습니다.
- 1939년 11월 조선총독부의 지원으로 전국 유림단체를 연합하여 총후봉공을 위한 정신운동에 나서도록 촉구하기 위해 조직된 조선유도연합회(朝鮮儒道聯合會)의 평의원으로 활동했습니다.
- 1940년 4월 정4위로 승서되었고, 같은 해 11월 열린 기원2600년축전 기념식 전 및 봉축회에 초대받고 기원2600년축전기념장을 받았습니다.
- 1941년 2월 흥아상공(興亞商工)주식회사 취체역에 취임 했다가 11월에 사임했습니다.
- 1943년 12월, 다쿠쇼쿠(拓殖)대학에 다니던 아들이 학도병에 지원•출진(出陣)하자, 사단법인 조선귀족회에서 장행회(壯行會)를 개최해 축하하고 격려했습니다.
사후:
- 1945년 8월 15일 해방에 따라 조선귀족의 지위는 실질적으로 무효화되었고, 1947년 5월 12일 일본에서 조선귀족령이 폐지되면서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기타:
- 조선귀족 이동훈은 '가짜 수산업자' 금품 수수 혐의와 관련하여 논란이 된 적이 있습니다. 2021년, 이동훈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은 '가짜 수산업자' 김모씨에게서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경찰에 소환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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