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만 (1933년)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본문
이용만(李龍萬, 1933년 ~ )은 대한민국의 관료이자 금융인이다. 강원도 평강군에서 출생했으며, 본명은 승만(承萬)이었다. 해방 후 공산정권이 들어서자 '이승만'과 이름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용만'으로 개명했다.
주요 경력
- 재무부 장관
- 우리금융지주 이사회 의장
- 내각기획통제관실 근무
- 청와대 정무수석실 파견
생애
- 1933년 강원도 평강군에서 자수성가한 부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 어린 시절 아버지 슬하에서 평안하게 보냈으나, 공산정권으로 가정 형편이 어려워졌다.
- 1950년 1월 가족과 함께 김화로 이사했으나, 6.25 전쟁 발발로 다시 공산정권의 지배를 받았다.
- 1950년 10월 국군이 김화를 점령했을 때 학도대에 자원입대했다.
- 1951년 5월 춘천 가리산 전투에서 부상을 입어 상이군인으로 명예 제대했다.
- 대전에서 우체국 서무과에서 일하며 대학입학을 준비했다.
- 성균관대학교 화학과에 합격했으나 등록금이 없어 진학하지 못했다.
- 중앙우체국 서무과에서 일하면서 성균관대학교 법대에 입학했으나, 다시 시험을 치러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행정학과에 편입했다.
- 대학생 시절 우표 수출입 업무를 익혔다.
- 5.16 군사정변 이듬해인 1962년 6월 내각기획통제관실에 자리를 얻어 중앙청으로 출근을 시작했다.
- 고등전형 시험을 거쳐 행정사무관 4호봉으로 근무하며 박정희에게 경제개발 계획의 진행 상황을 수시로 보고했다.
- 1966년에는 청와대 정무수석실에 파견되어 일했다.
- 재무부 장관 및 우리금융지주 이사회 의장 등을 역임하며 금융계에서 활동했다.
기타
- 실향민이다.
- 고려대학교 출신이다.
- 노태우 정부 및 문민정부에서 활동했다.
- 공무원 출신 정치인이다.
참고
- 동명이인으로 일제강점기 경찰 이용만(李容萬)이 있다.
- 영화 공공의 적 시리즈에도 이용만이라는 등장인물이 있다.
- 2025년 현재까지 생존해 있다.
| 이용만 (1933년) - [인물]에 관한 문서 | |
|---|---|
| 기본 정보 | |
| 이름 | 이용만 |
| 원어명 | 李龍萬 |
| 로마자 표기 | Yi Yongman |
| 출생일 | 1933년 |
| 출생지 | 강원도 |
| 국적 | 대한민국 |
| 직업 | 관료 금융인 |
| 경력 | |
| 주요 경력 | 재무부 장관 우리금융지주 이사회 의장 |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