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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식 (법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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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이우식(李愚軾, 1901년 11월 26일 ~ 1985년 8월 13일)은 일제강점기부터 활동한 법조인으로, 대한민국의 대법관을 지냈습니다.
생애 및 활동:


  • 1901년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신리에서 출생했습니다.
  • 대구고등보통학교를 퇴학당하고 1926년 경성법학전문학교를 졸업했습니다.
  • 같은 해 일본 고등문관 사법과 시험에 합격하여 법조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 평양지방법원 검사국 사법관 시보를 시작으로, 경성지방법원 예비판사, 경성지방법원 인천지청, 전주지방법원, 경성지방법원 판사 등을 역임했습니다.
  • 1930년 판사직에서 퇴임 후 변호사로 활동했습니다.
  • 해방 후 미군정에 발탁되어 전주지방법원장으로 복귀했습니다.
  • 1951년에는 대법관으로 재직했습니다.
  • 대법관 퇴임 후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법전편찬위원회 위원, 헌법위원회 위원, 탄핵재판소 심판관 등을 역임했습니다.
  • 1975년 법조계를 떠난 후에는 교육사업에 힘썼습니다. 특히 유교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전주향교재단 이사장으로 전주명륜대(현 국립 전북대학교)를 설립, 발전시켰습니다.
  • 1984년 도산서원 원장으로 추대되었으나, 건강 문제로 활동하지는 못했습니다.
  • 고향인 지천면 신리에 학교 부지를 희사하여 신동중학교와 칠곡고등학교가 설립되는데 기여, 부친의 아호를 딴 '후석장학회'를 설립하였습니다.

창씨개명 거부 및 6.25 전쟁 관련 일화:

  • 이우식은 일제강점기에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판사와 변호사로 활동했습니다.
  • 6.25 전쟁 중에는 대법관으로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기타:

  • 자(字)는 경소(敬蘇), 호(號)는 우당(愚堂)입니다.
  • 벽진 이씨(碧珍李氏)로, 완정(浣亭) 이언영(李彦英)의 후손이자 후석(后石) 이주후(李周厚)의 차남입니다.
  • 1994년 10월 13일 매일신문 기사에 따르면, "훌륭한 선현 법조인"으로 언급되며, 그의 법조 경력이 모범으로 거론되었습니다.

) 이주후(李周厚)의 차남입니다.

  • 1994년 10월 13일 매일신문 기사에 따르면, "훌륭한 선현 법조인"으로 언급되며, 그의 법조 경력이 모범으로 거론되었습니다.


이우식 (법조인)
기본 정보
이름이우식(李愚植)
출생1923년 1월 12일
사망1985년 8월 14일
직업법조인
분야법률
경력
주요 경력전 대법원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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