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이충영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본문

이충영(李忠榮, 1908년 ~ ?)은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 건국 초기의 법조인입니다.
생애 및 활동:


  • 1908년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신리에서 태어났습니다.
  • 대구고등보통학교(현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유학을 떠났습니다.
  • 일본 큐슈 구마모토 제5고등학교를 거쳐 1932년 동경제국대학(현 도쿄대학) 법학부를 졸업했습니다.
  • 고등문관시험에 합격 후, 1934년 조선총독부 사법관 시보를 시작으로 대구부, 함흥부, 광주부, 평양부 등에서 판사로 근무했습니다.
  • 1943년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에 변호사로 등록하여 활동하다 광복을 맞이했습니다.
  • 광복 후 서울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던 중 6.25 전쟁이 발발했고, 1950년 8월 10일 서울에서 납북되었습니다.
  • 납북 후의 행적은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1987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가족 관계:

  • 장남 이수성은 서울대학교 총장과 국무총리를 역임했습니다.
  • 차남 이수인은 영남대학교 교수와 국회의원을 역임했습니다.
  • 삼남 이수윤은 한국교원대학교 교수를 역임했습니다.
  • 사남 이수억은 아더앤드선 대표를 역임했습니다.
  • 사위는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입니다.

기타:

  • 납북 후 남한에 남겨진 자녀들이 모두 사회적으로 성공하여 하버드대학 한국학과 에드워드 와그너 교수는 이충영의 가문을 '한국의 전통명가'라고 평가했습니다.
  • 일제강점기 판사 경력으로 인해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었습니다.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