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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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임노월 (林蘆月, 본명: 임장화(林長和))은 한국의 소설가이다.
생애임노월은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300석 규모의 논과 2만여 평에 달하는 과수원을 소유한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다. 당시 대부분의 조선 지식인들이 유학을 통해 근대 문명을 접했던 것처럼, 임노월 역시 일본 와세다 대학 문과에서 현대미술사를 전공하고 도요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며 서구의 예술과 철학에 심취했다.
특히, 유미주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사상에 깊이 공명하여 1920년 1월 24일 <춘희>(매일신보)를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했다. 1925년 <무제>(동아일보)를 끝으로 절필을 선언할 때까지, 매일신보, 개벽, 영대 등의 지면에 와일드의 예술관을 비롯한 서양 표현주의 예술론을 소개하고 소설 창작에 몰두하며 활발히 활동했다.
1920년 매일신보에 연재한 <춘희>, <위선자>, <예술가의 둔세> 등의 탐미적 성향의 소설들은 임노월의 예술지상주의적 입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1921년에는 <창조> 동인으로 참여했으며, 1923년 <개벽>에 발표한 평론 <사회주의와 예술: 신개인주의의 건설을 칭함>을 통해 '신개인주의'를 제창하며 주관적, 개인적 미의식을 중시하는 예술관을 드러냈다. 이후 <영대>의 편집인 겸 발행인을 맡아 '야영(夜影)', '마경(魔境)' 등의 필명을 사용하며 <예술지상주의의 신자연관>, <미(美)의 절대성> 등의 논문과 비평을 발표했다.
문학 활동 및 특징임노월은 1920년부터 1925년까지 짧은 문단 생활 동안 시 23편, 소설 7편, 평론 5편, 수필 3편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발표했다. 그의 작품은 오스카 와일드의 영향을 받아 유미주의적 경향을 강하게 드러내며, 당대 문단의 주류였던 계몽주의적, 민족주의적 문학과 대조되는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했다.
임노월은 사회적 현실이나 민족 문제보다는 개인의 내면과 예술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였으며, 도덕적 제약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사랑을 갈망하는 인물들을 주로 다루었다. 이러한 특징은 <지옥 찬미>, <악마의 사랑> 등의 작품에서 잘 드러난다. 또한 그의 작품은 독특한 문체와 인물 설정으로 당시 문단에서 주목받았으나, 동시에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절필과 이후임노월은 1925년 돌연 절필을 선언하고 문단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의 갑작스러운 절필은 당시 문단이 예술지상주의적 경향을 배척하고 사회주의, 민족주의 문학으로 전환되던 시기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절필 이후의 행적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며, 생몰년도 또한 불분명하다. 임노월은 문단에서 잊혀진 작가였으나, 2000년대 이후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참고 자료
- 위키백과 임노월
- 오마이뉴스 - 탐미주의자 임노월, 시대를 앞서간 자의 불행
- 네이버 블로그 - 소설가ㆍ평론가 임장화(林長和.임노월)
- Im Nowol(임노월) | Digital Library of Korean Literature(LTI Korea)
- 국민일보 - 책 / 일탈적 사랑의 고통과 좌절…임노월 소설 '악마의 사랑'
- 한겨레 - “지옥 만세” 악마적 탐미주의의 도발
- 교보문고 - 춘희(외) | 임노월
- RISS - 1920년대 소설과 폭력의 신화-임노월과 최서해를 중심으로
- 공주대학교 도서관 - 서지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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