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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온 (132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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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온(鄭溫, 1324년(고려 충숙왕 11년) ~ 1402년(조선 태종 2년))은 고려의 문신입니다.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자는 자옥(子玉), 호는 우곡(隅谷)입니다.

정온은 고려 말 대사헌을 지냈으며, 이성계의 역성혁명에 반대하여 조선 건국 후 벼슬을 버리고 낙향했습니다. 그는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을 지키며, 진주에 우곡정(隅谷亭)을 짓고 은거했습니다.

정온과 관련된 흥미로운 일화가 있습니다. 이성계는 정온에게 벼슬을 권유했으나, 정온은 눈이 멀었다는 핑계로 거절했습니다. 이성계는 그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사위 이제(李濟)를 보냈고, 이제는 솔잎으로 정온의 눈을 찔렀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온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고, 이에 이제는 그의 충절에 감탄하여 "선비 기운이 가득한 골짜기(士氣滿谷)"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고 합니다. 이로부터 사곡(士谷)이라는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정온의 충절은 후대에까지 이어져, 1694년(숙종 20년) 진주의 정강서원에 배향되었습니다. 그의 충절이 남아있는 우곡정은 현재 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사곡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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